예언의 신을 통해서 볼 때 재림선도들의 옷차림에 있어서 세상 사람들의 유행을 따르지 말아야 할 것과
가능한 한 안식일 예배를 위한 특별한 예복을 따로 마련해 두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알 수 있다.
선지자의 권면을 들어보자.

“애굽에서 나온 이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방인들과 구별하고
하나님의 독특한 백성임을 표시하기 위하여 옷깃에 단순한 푸른 리본을 달도록 명령하셨다.
그러나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저들이 입는 옷에 어떤 특별한 표시를 하라는 요구를 하신 적이 없다.

그러나 신약 성경에 보면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을 모본으로 참고하도록 지시하신 말씀들을 찾아볼 수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입는 옷에 관하여 뚜렷한 지시를 말씀하셨다면
오늘날 이 시대에 사는 당신들의 백성들이 입는 옷에 관하여서도 어떤 주의의 말씀을 주실 것이 아닌가?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어떤 점이 저들의 옷에 나타나야 할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귀중한 보물과도 같은 당신의 백성들은 저희가 입는 옷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 아닌가?
또한 저들은 옷 입는 점에 있어서 모든 사람들의 모본이 되고 저들의 단순한 스타일이
자랑과 허영과 사치성 및 쾌락을 사랑하는 세상 사람들을 견책하는 것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요구하시는 점이 바로 이러한 것이다. 성경의 말씀은 교만을 견책하셨다.

이와 반면에 사치와 의복에 대하여 쉴 새 없이 논평하면서 저들 자신의 차림새에 대해서는
전혀 부주의하고 더러운 옷차림이 마치 하나의 미덕이 되기나 하는 것처럼 생각하며
때때로 바람에 날릴 듯하고 속이 훤히 비치는 초라한 옷을 입고 다니는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
저들의 옷은 언제 보아도 더러우며 사치를 책망하는 말을 하고 다닐 것이다.

저들은 단정하고 말쑥한 맵시도 사치와 동일한 것으로 간주한다.
만약 저들이 시내산에서 들려오는 율법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모인 군중들 속에 있었다면
“의복을 빨게 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였기 때문에 이스라엘 군중들에게 쫓겨났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시내산에서 반포하신 십계명은 무질서하고 더러운 습관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 거할 수 없을 것이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않고 저희 의복을 빨지 않았을 경우 거룩한 율법의 선포를
감히 들을 수 없었거든 하물며 몸과 의복과 저희가 사는 집을 깨끗하게 하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에
어떻게 거룩한 율법이 기록될 수 있을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이다.

저들의 신앙 고백이 하늘을 치솟을 듯이 고상한 성질의 것인지는 몰라도 저들의 실제적인 생애는
지푸라기보다도 가치가 없는 것이다. 저들의 감화는 불신자들을 구역질 날 정도로 불쾌하게 할 것이다.
오히려 그러한 사람들은 하나님의 충성된 백성들의 대열에 남아 있지 않는 편이 훨씬 좋을 것이다.

하나님의 집은 그러한 신앙 고백자들로 말미암아 모욕을 당하게 된다.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하여 안식일에 모이는 모든 신자들은
가급적 단정하고 몸에 잘 맞으며 예배드리는 집에 어울리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저들이 다른 옷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주일 내내 농장에서 일할 때 입던 옷을
안식일에 그대로 입고 나오는 것은 안식일과 하나님과 교회를 욕되게 하는 것이며
안식일을 주님의 거룩한 날이라고 공언하는 다른 신자들에게 욕을 돌리는 행위이다.

만약 진심으로 안식일의 주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존귀하게 하고 싶으나
바꾸어 입을 옷이 없는 사람들이 있다면 여유가 있는 다른 신자들이 그에게 안식일에 입을 옷을 한 벌 기증하여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하나님의 집에 나타나도록 도와주어야 할 것이다.
의복에 있어서 보다 동일성을 나타내 보이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이다.

비싼 의복이나 여분의 장식품을 사들이는 데 돈을 지출할만한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작은 극기의 정신으로
순결한 신앙심을 나타낼 수 있으며 오히려 자기 자신은 단순한 옷을 입고 과거에 긴요치 않게 지출하던 돈으로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형제자매들을 도와 단정하고 우아한 옷을 사서 입게 해야 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성경이 교훈하는 것처럼 세상에서 분리되어야 한다고 하여
신자들은 옷차림에 대해서 전혀 무관심해야 한다는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우리 믿는 자매들 가운데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생각에서 안식일에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하여 성도들의 집회에 나타날 때 일주일 내내 저들이 쓰고 있던
“썬보넷”(Sun-bonnet-여자용 해가리개 모자)을 쓰고 평일에 입던 옷을 입고 나오는 자들이 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의복 문제에 대하여 이런 부류의 자매들과 똑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남성들이 있다.
저들은 옷에 먼지와 흙이 묻고 심지어는 찢어진 곳이 벌어진 그대로
지저분하게 걸쳐 입고서 안식일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이는 장소에 나타난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은 흔히 세상에서 존경을 받는 어떤 친구와 만날 약속이 있어서 나갈 때
저들은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하여 자기에게 있는 가장 좋은 옷을 입고 그 자리에 나타날 것이다.

세상의 친구들은 만약 상대방이 머리를 빗지 않고 더러운 옷을
되는대로 입고 나타날 경우 저들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사람들은 안식일을 당하여 지존하신 하나님께 경배드리기 위하여
교회에 나아갈 때 아무렇게나 입고 머리도 매만지지 않고 되는대로 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저들은 저희 자신의 몸과 의복이 보여 주는 그대로 존경심과 경건한 정신이 결여된 채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과 면접하는 장소가 되고 하늘의 천사들이 참석하는 교회에 나가게 된다.
저들의 전체적인 모습은 저희 자신의 품성의 특징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내용은 옷 입고 자랑하려 한다는 것이다.
저들은 단정함, 기호 및 질서 등을 허영에 속하는 것으로 취급한다.
이러한 불쌍한 영혼들은 의복에 대한 저들의 견해와 마찬가지로
저희의 대화, 행동 및 저들의 대인 관계 역시 같을 것이다.
저들은 가정에서나 다른 형제들과 세상 사람들 앞에서 부주의하고 때때로 저속한 태도를 보일 것이다.

그 사람의 입은 옷과 몸가짐을 보면 대개 그 남성이나 그 여성의 인격의 차원을 발견할 수 있다.
옷을 함부로 입고 그 매무새가 단정치 못한 사람들은 고상한 내용의 대화를 하는 경우가 드물고
저들의 감정은 거의 세련되어 있지 않다. 때때로 저들은 괴팍하고 조잡한 것을 겸손한 것으로 잘못 생각한다.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은 세상의 소금과 세상의 빛으로 상징되었다.
그리스도인들의 구원하는 감화력이 없이는 이 세상은 자체의 타락으로 말미암아 멸망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의복과 몸가짐에 부주의하며 사업 거래에 정확하지 못한 자칭 그리스도인들의 부류를 바라볼 때
저들의 의복이 보여 주는 그대로 거칠고 예모가 없으며 태도가 단정치 못하고 대화의 내용이 저속하다.

이와 동시에 저들은 어처구니없는 특성들을 참된 겸손과 신앙적인 생애의 표시라고 믿고 있다.
만약 구세주께서 이 세상에 계셨다면 그러한 자들을 가리켜 세상의 소금이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인가 상상해 보라. 결코 그렇게 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고상한 내용의 대화를 해야 하며 비굴할 정도로 어리석은 아첨을 하는 것은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예모있고 친절하며 인정이 많은 정신을 가져야 한다.

저들이 하는 말은 성실하고 진실한 성질의 것이어야 한다.
또한 저들은 저희 형제들이나 세상 사람들과의 대인 관계에서 성실하여야 한다.
저들이 입는 의복 역시 사치와 과시(誇示)를 피해야 하며 어디까지나 단정하고 야하지 않은 것이어야 하며
우아하되 건전하고 기호에 맞는 것이어야 한다. 특히 거룩한 안식일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에 관하여
신령한 관심을 나타내는 방법으로 의복에 특별히 유의를 해야 할 것이다.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과 세상 사람들을 구분하는 경계선은 오해받지 않을 정도로 분명해야 할 것이다.
과거에 부주의하고 태만했던 사람들이 진리로 말미암아 생활이 고상하게 성화되고
단정한 습관을 지키며 의복에 있어서 건전하고 기호에 맞는 것을 택하여 입을 때
그러한 신자들의 감화는 열 배나 더할 것이다. 우리가 섬기는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며
어떤 면에 있어서든지 혼란과 불결함과 죄와 같이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옷을 입는다고 하여 저희 자신을 너무 돋보이게 하려고 애써서는
안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저희가 신앙과 분수에 알맞게 우아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옷을 지어 입는다면
저들은 유행을 따르지 않게 될 것이며 세상을 닮기 위하여 저희 옷 모양을 바꿔서도 안 될 것이다.
비단 모든 세상 사람들이 저들과 다를지라도 바른길을 따르기 위하여
고결한 독립성과 도덕적인 용기를 나타낼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세상이 소개하는 드레스 스타일이 점잖고 편리하면 건강에 도움이 되고
성경의 원칙에 일치하는 것이라면 그런 옷을 입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우리들의 관계를 변화시키거나
세상 사람들로 그런 드레스 스타일을 본받게 하는 것이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본받아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저들은 극단적인 것들을 피해야 한다. 저들은 칭찬이나 비난에 관계없이
겸손한 정신으로 똑바른 길을 따라가야 하며 보람이 있는 바른 원칙을 고집해야 한다.”(2기별, 473-477)

이 글을 읽고 있는 남녀들은 이 시대에 가장 적절한 기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남은무리 가운데서 정확한 진리의 말씀들이 생애에 나타나기를 기대하신다.

만약 우리가 세상에, 그리고 교만에 대하여 죽지 않는다면 이 사업을 끝마치는 일의 일부를 차지할 수 없을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우상에 빠져 있을 때에 우리 안에, 그리고 우리를 통해서 일하실수 없으시다.

그 우상은 우리의 마음 깊은 곳에 품어져 있거나 숨겨져 있을 수도 있다.
우리가 성경과 예언의 신을 통해 주어진 신성한 훈계의 말씀을 경히 여길 때
우리의 행동을 통해서 우리는 유행의 여신을 숭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일 것이다.

만약 우리에게 주어진 교훈의 말씀에 주의를 두지 않는다면
에브라임 지파에게 임했던 “그들이 우상과 연합하였으니 버려두라”는 운명의 선언이 우리에게도 임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