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성의 본질

 

재림교회 일각에서 전파되고 있는 성령하나님의 인격과 개체를 부인하면서 성령은 악령이라는 극단의 말로 표현하는 슬픈일이 교회 안팎으로 큰 파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교회의 무능력과 경건의 능력이 없으므로 영혼들이 마치 닻이 끊어진 배들처럼 흔들리는 이런 위급한 때에 성령을 부인하면서 시기와 때의 절박함을 강조하고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침투하는 거짓 가르침은 우리들에게  참으로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성령하나님이 아버지와 예수님의 생각과 감화력이라는  주장은 분명 어떤이들에게는 호기심을 충족시킬수 있는 연구주제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결코 간단하게 생각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하여 이곳을 통하여 성경상 진리를 공개하고자 한다.

 

오묘한일 : 신성의 본질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29:29, 30)

 

인간들은 끝임 없이 오묘한 일에 대한 비밀을 알고 싶어 하는 유혹을 받아왔다. 태초에 갓 태어난 인류도 역시 마찬가지였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단의 유혹에 너무도 쉽게 반응하였고 미혹 당했다. 선악과를 먹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 속에 무엇인가 있을 법한 비밀에 대하여 알고 싶었던 것이다.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부터 자신의 지력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질문을 하기 시작한다.

 

'엄마 어떻게 아기가 뱃속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어디로 아기가 나와?' 라고 질문하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질문에 어머니들은 순간적으로 대답할 말을 몰라 당황할 때가 있다.

그것은 대답할 수가 없어서가 아니라 아직 아이는 그의 지력이 그런 문제들을 이해하기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의 신성문제를 연구하는 일 역시 마찬가지이다. 유한한 인간의 지력으로 이해 할 수 없는 지식들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밝히지 아니하시고 설명하지 않으신 말씀에 대하여 추측과 설명을 하려고 하는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밝혀진 지식과 나타난 일을 아는 일은 우리의 특권일 것이다.

 

이제 우리가 연구 하고자 하는 소위 신학적인 용어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조심스럽게 연구해 보기로 하자. 오늘날 기독교계에서 말하고 있는 삼위신성의 논란은 그 기원이 십 수세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아직도 이 주제는 사단이 즐겨 사용하는 함정이 되고 있다.

 

중요한 사실은 성경은 하나님의 신성의 본질을 연구하도록 하기위하여 기록된 책이 아니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종들을 통하여 보내신 메시지를 기록한 책이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때문이다. 물론 극히 적은 부분에서 신성의 본질을 성경은 언급하고 있으나 인간의 지력으로 이해할 수 있는 지극히 작은 부분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을 뿐이다.

 

왜냐하면 영원이라는 말과 스스로 계신다는 하나님의 존재를 인간의 지혜로서는 결코 이해될 수도 측정할 수 없는 오묘에 속한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본질에 대하여 성경에 나타내신 그이상의 것을 알려고 시도하다가 각종 함정에 빠지고 말았다. 하나님의 본질에 대해서는 인간들의 지력과 지혜로서는 결코 풀 수 없는 능력의 한계를 벗어난 주제이기 때문인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연구를 시도하기 전에 분명하게 밝혀둘 일은 성경에 나타난 말씀 그대로의 사실만을 나타내고자 한다.

 

오늘날 기독교계에 널리 전해지고 있는 삼위신성문제들을 언급해 보기로 하겠다. 가장 중요하게 전해지고 있는 신성문제로는 유일신론과 삼신론, 삼위일체론이 있다. 이 문제들을 성경에 나타난 말씀대로 비교 검토해볼 것이다.

 

 

유일신론:

 

오직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아들 예수님과 성령의 신성을 인정하지 아니하는 유니태리안주의와 아들 예수님의 신성은 인정하되 피조(창조에 의함)된 신이요 성령의 존재와 개체를 인정하지 아니하는 아리우스주의자들이 있다. (“여호와의 증인교회가 그 대표이다.)

 

이런 논리는 이론적으로 매우 지당하고 논리 정연하며 이해하기에는 편리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품격을 떨어트리고 그분의 신성에 큰 타격이 주어진다. 그리고 그리스도가 피조물이라면 똑같은 피조물인 인간을 구원(대속)할 능력과 자격이 없다는 사실을 이해할 것이다. 생명의 근원이 피조물에겐 없기 때문이다.

 

천하인간에게 구원 얻을 이름이 예수밖에 없다는 성경의 진리를 믿는다면 예수를 인정하지 않는 유태리안주의와 예수를 피조 된 신으로 믿는 아리안주의는 인간의 구원을 불가능하게 하는 사단의 함정임을 알게 된다.

 

 

삼신일체(三神一體) :

 

이교도들이 믿는 다신교적인 삼신론과는 달리 소위 기독교계일각에서 말하는 삼신일체론(one body)이 있다. 삼신일체(三神一體)론은 세 하나님, 곧 성부 성자 성령님의 이름은 있으나 실제적으로 존재하시는 분은 한 분(한 몸 one body)이라는 것이다.

 

한 분의 신성이 구약에는 아버지로 신약에는 아들로 지금은 성령으로 인간에게 나타나신다는 것이다. 이런 사상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이 상상외로 많이 있음을 보게된다. 그러나 이 사상은 예수님을 극악한 기만자요 사기꾼이요 하나의 연극배우로 전락시켜 버린다. 다음의 말씀을 읽은 다음 그 이유를 설명하고자 한다.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사자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돕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피 방울같이 되더라” (22:42-44)

 

제 구 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15:34)

 

이제 이 말씀을 생각해보자. 예수님 자신이 아버지요 성령이요 아들이라면 겟세마네에서 땀이 핏방울이 되어 떨어지는 기도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절규는 무엇인가?

 

누가 누구에게 하는 기도이며 절규였던가? 예수자신이 아버지요 성령이라면 이것은 기만이요 사기극이요 연극이다. 우리들의 구원이 이런 사기극의 주연배우에 의하여 이루어 질 것을 믿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얼마나 가련한 존재이며 우리가 믿는 믿음의 소망은 어디서 찾을 것이며 무슨 소망이 있는가?

 

그러므로 이런 주장은 이론적으로는 그럴듯하나 사단의 기만이며 하나님의 품성을 완전히 왜곡시키는 사단적인 이론이다.

 

 

 

삼위일체(三位一體):

 

정통 기독교계에서 믿고 있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는 것이다. 세분의 개체가 각자 존재하시나 동일하게 모두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러지므로 여호와는 유일하시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므로 삼위일체라는 신학용어가 생겨나게 된 것이다.

 

설명하기도 어렵고 이해하기도 어렵지만 겸손한 그리스도인은 성경 그대로의 표현을 말씀대로 믿고 있다. 인간의 이론과 논리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신성의 본질을 이해하기에는 인간의 지력이 감당하지 못하는 분야가 있음을 시인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호기심 많은 인간들에 의하여 지존하신 하나님의 위상과 품격이 인간들에 의하여 제 멋대로 파헤쳐져 한갓 사람들의 호기심을 충족시키는 신학연구 주제로 전락하고 있다. 삼위일체란 신학적인 용어를 이용한 많은 잘못된 견해들이 있기 때문에 구태여 신학적인 삼위일체란 용어를 사용하는 문제로 필요 없는 논쟁에 들어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삼위 하나님의 대한 인간들의 호기심은 매 시대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의구심을 일으켰다.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오묘에 관한 것들을 알기 위하여 추측과 가정(假定)을 통하여 많은 이론들을 만들어 내었으나 사단의 함정에 빠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왜냐하면 결코 하나님의 본질을 인간의 지력으로 완전히 이해되지도 않을 것이며 설명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겸손한 그리스도인은 오히려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할 수 없고 모든 것을 알 수 없기에 그분은 더욱 위대하신 분이요 인간들의 섬김의 대상이 된다고 믿는다.

 

소위 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는 무리들 중에는 신성의 2위이신 예수님을 창조되신 신이라고 믿는 자들이 있고 반면 예수님은 아버지가 낳으신 혈연관계의 아들이라고 설명하면서 아버지에게서 파생된 생명을 가지신 분으로 신격을 격하시켜 설명을 한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시작이 없는 원천적인 생명을 갖고 있으나 아들(예수님)은 태어난 시점이 있으며 아버지에게서 파생된 생명을 가진 창조주라는 주장을 한다. 그리고 성령의 존재는 존재하지 않으며, 아버지와 아들의 능력 및 감화력, 곧 영으로 생각한다.

 

 

간략한 재림교회의 역사

 

재림교회가 형성되던 초기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삼위일체의 정통적인 견해를 믿고 있던 자들이었으나 소수가운데는 아리안(Arian)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과 크리스찬 컨넥션(Christian Connestion) 교단에서 나온 목사들이 있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에 관하여서는 연합의 일치를 보았으나 예수에 관해서와 성령의 개체성에 관해서는 불일치한 가운데에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예수님을 피조물로 믿고 성령의 존재를 부인하는 아리안(Arian)주의 사상을 가진 자들과 크리스찬 컨넥션(Christian Connestion) 교단에서 나온 자들은 역시 성령의 개체성을 부인하였고 예수에 대해서는 그분의 영원성에 대한 의문과 아버지와는 차별되는 신성의 소유자라는 견해들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리안(Arian)주의의 사상을 가진 자들 중 대표적인 인물은 우리이야 스미스가 있었다. 그리고 제임스 화잇, 죠셉 베이츠, J, H. 와그너(E, J. 와그너의 아버지)(Christian Connestion)교단에서 목사안수를 받았거나 그 교단에서 나와 재림운동에 참여한 자들이었다. 이들은 성령의 개체성을 부인하였고 예수님의 신성은 아버지와 다른 차별되는 신성의 소유자라는 사상을 가지고 있었다. 이와 같이 기라성 같은 재림선구자들 중에는 이런 사상을 소유한 소수의 무리들이 있었다.

 

그러나 이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사상과 하나님의 계명이라는 중차대한 주제 하에 서로 연합을 이루어 조화롭게 사업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삼위하나님에 대한 견해는 서로 다르게 생각하는 가운데 1846년으로부터 1870년대까지 자신의 사상들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정기 간행물과 잡지, 리뷰지(Review)를 통하여 간간히 발표 되었다. 이런 분위기는 1888년까지 이어져 갔었다.

 

이와 같은 상황 속에서 화잇 선지자는 1846-1870년대까지 이 주제에 대하여 거의 침묵하고 있었다. 그러나 재림교회는 1888년을 전후로 하여 그리스도의 선재성 및 하나님과 동등 되심과 성령의 개체성에 대한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하였다. 1888년이 그 전환점이 되었다.

 

1888년 이후부터 엘렌지 화잇 선지자는 정기 간행물을 통하여 위대한 큰 구원에 대한 진리를 공개하시면서부터 그리스도의 선재성과 그분의 신성에 대한 빛이 밝아지기 시작하였다. 그리스도의 선재하심, 완전한 신성에 대하여 그리스도는 아버지와 본질에 있어서 하나라고 선포 하셨다. 특히 선지자가 호주에 체류하고 있을 즈음 (1891-1900)시대의 소망을 기록 하셨다.

 

그 내용 중에는 그리스도는 영원히 아버지와 함께 계셨고 빌리지 않고 파생되지 않은 근본적인 생명을 소유(所有)하셨다고 선포하심으로 그리스도에 관한 피조설과 아버지와는 차별되신 신성의 존재라는 의문점을 종식시켰다. 뿐만 아니라 성령에 대한 개체성에 대한 의문점도 불식시켰다. 하늘에는 분명 세분의 존재와 세분의 위, 곧 신성의 제삼위가 되신 성령에 대하여 확증하심으로 성령의 개체성을 부인하는 주장도 재림교회 안에서는 사라지게 되었다.

이후 재림교회 안에서는 삼위일체에 대한 불신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성경과 증언의 말씀으로 확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신성의 본질은 역시 오묘한 부분이 많이 있기에 사단은 인간의 의구심과 불필요한 지식을 탐구하고자 하는 영혼들을 이용하여 끊임없이 삼위하나님에 대한 여러 가지 의구심을 일으켜 우리의 시야를 영원한 복음, 세 천사의 기별에서 돌이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작금에 이르러 성령의 개체와 그리스도의 영원성을 믿지 않았던 몇몇 재림선구자들의 글을 이용하여 마치 교회가 진리를 숨기고 조작한 것처럼 왜곡하고 삼위일체의 진리를 불신하는 무리들이 재림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다. 그러므로 이제 성경 말씀에 나타난 그대로 신성의 본질을 연구해 보고자 한다.

 

 

연구주제 1

신성의 2위이신 그리스도

 

지금까지 성부하나님에 대해서는 별 논쟁이 없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에 대해서만은 그분의 신분과 영원성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이 많다.

 

예수그리스도는 창조된 신성이라는 아리안주의와 예수님을 성부하나님이 낳으신 아들이라는 혈연관계로만 설명하려는 시도가 끊임없이 시도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그리스도의 신성은 시작이 있는 하나님이며 오직 성부 하나님만이 영원 전부터 스스로 존재하는 여호와라는 결론을 내리게 된다. 이러한 시도는 결국 수많은 의문과 추측을 낳게 하며 무수한 이론들을 만드는 원인을 제공하여 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추측들을 용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예수그리스도는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다는 사실이 그런 모든 인간들의 추측들을 일소시키기에 충분하다.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이란 말씀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속성을 말씀하신 것인데 이 말씀을 예수님자신에게 적용하셨기 때문이다.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1:8)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1:17)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22:13)

 

그분은 친히 예수님은 알파와 오메가로서 시작도 끝도 없다고 증거 한다. 이와 같은 예수를 어떻게 창조(피조물)되신 신이라고 하겠으며 성부하나님의 혈육의 아들이라고만 간단히 설명 할 수 있겠는가? 예수님이 성부하나님의 혈육의 아들이라면 예수님은 분명 존재의 시작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성경은 예수그리스도를 여호와 하나님으로 호칭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란 스스로 있는 자란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피조된 신이라고 말하는 논리와 성부하나님의 혈육의 아들이라는 논리는 잘못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아버지로 부터 태어남으로 하나님(아들)이 되셨다면 어찌하여 스스로 존재하였다고 말 할 수 있겠으며 알파와 오메가가 될 수 있겠는가? 성경은 모순투성이가 되고 만다.

 

다음의 성경 절을 대조하여보면 예수님은 분명 여호와하나님이심이 확실하다.

 

구약

신약

비고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하였느니라”(20:11)

-“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1:2, 3) 1:14.참조

구약의 여호와는 예수님을 지칭하고 있음

(여호와=예수님)

 

엿새 동안에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은 여호와이시다. 그런데 그분을 요한은 예수님이시라고 고 증거하고 있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그러므로 구약에서는 예수님이 여호와로 인간들에게 나타나셨음을 알게 된다. 예수님이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이실 진데 어떻게 시작이 있겠는가?

 

여호와의 뜻이 무엇인가?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3:13, 14)

다음의 말씀들을 계속하여 대조하여 보라 분명 예수 그리스도는 구약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확신할 수 있다.

 

 

 

구약

신약

비고

7:8; 3:1-5 = 여호와가 심판주이심

5:22=모든 심판은 예수님이 하심

예수=여호와

23:1 = 여호와는 선한목자

10:11 = 예수님이 선한목자이심.

예수=여호와

44:6 =여호와가 처음과 나중

11:8, 17; 22:13=예수님이 처음과 나중.

예수=여호와

43:11 =여호와가 구원자이심

4:12 = 천하인간에게 오직 예수이름만이 구원을 줌

예수=여호와

 

이처럼 구약과 신약의 말씀을 대조하여 보면 예수님이 여호와라는 증거를 수도 없이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확실한 말씀들을 보면서도 누가 감히 예수를 피조 되신 신이라고 할 것이며 또한 예수님은 아버지에게 파생된 생명(혈육)을 가졌으므로 끝은 없으나 시작이 있는 분으로 신격을 격하시킬 수 있겠는가?

 

누구나 성경을 읽노라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와 동등에 대하여 의문을 안 가져본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성경 말씀에 설명되어 있지 않는 말씀을 구태여 설명하려고 추측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은 아들이기에 아버지보다는 연하이며 시작이 있다는 설명은 성경에서 설명하고 있지 않은 위험한 생각인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님에 대한 영원성과 자존하심에 대한 많은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시작이 없으신 영원 자존하신 분인 그리스도의 신성의 위상을 함부로 격하시켜 버리는 실수를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먼저 그분의 영원성과 스스로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이 되신다는 말씀에 우선적인 비중을 두어야 한다. 그 다음에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 대하여 연구해야 하며 말씀과 말씀이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말씀에서 조화를 발견할 수 없는 부분은 오묘로 남겨 놓아야 하는 것이다.

 

오묘한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구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로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 (29:29, 30)

 

 

예수님은 혈육으로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님

 

성경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실 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셨다고 말한다.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이 아들을 만유의 후사로 세우시고 또 저로 말미암아 모든 세계를 지으셨느니라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저가 천사보다 얼마큼 뛰어남은 저희보다 더욱 아름다운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심이니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뇨”(1:2-5)

 

아들이라는 이름은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실 때 아버지하나님으로부터 기업으로 얻으신 이름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본래 아버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셨으며(2;6) 여호와 하나님으로 호칭 되셨다. 스스로 계신분이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로 태어나신 시점을 성경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2:7)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저더러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고”(5:5)

 

성경은 이와 같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나타내신 것은 확실하다. 그러나 그분의 나심을 인간적인 혈연관계로 설명한다면 많은 문제를 낳게 된다. 왜냐하면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생각하게 되고 그리스도의 신성에 대한 신격에 대한 문제가 생기고 그가 구약에서 여호와로 나타난 모든 사건이 거짓말이 되고 말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으로 나타나신 까닭은 구속의 경륜 속에서 그 의미를 찾아야 하며 설명되어야 한다. 성경에는 분명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라고 증거하고 있다.

그러면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2:7)는 오늘이 언제를 말함인지 연구해보자. 예수님이 분명 여호와 하나님이라면 아버지에게서 태어나신 시작이 있을 수 없다는 배수진을 치고 연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경에는 예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말씀을 수없이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예수님이 언제 아버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을 갖게 되었는지 또한 아들이라는 이름을 기업으로 얻으셨는지 성경을 통하여 그 해답을 얻어야 한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2:7)는 그 오늘날이 언제인가? 곧 예수님이 인간으로 마리아에게 태어난 날이 바로 오늘날인 것이다. 다음의 말씀에 유의해보자.

 

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1:35)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말하기를 네가 장차 낳을 아기는 사람의 아들이 아니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분명이 말씀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육신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나실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기업으로 갖게 된 것이다. 확실 하지 않는가?

 

예수님에 대하여 구약성경에 이미 아들이라고 명하신 것은 그분이 아들이라는 이름을 기업을 얻어 이 세상에 오실 것을 미리 예언하신 말씀인 것이다. 창세전에 죽임을 당한 어린양이라는 말과 표현방법이 같은 것이다. 인간이 죄도 짓기 전에 이미 예수님이 죽으실 것을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전지하신 능력의 표현이요 계획을 미리 나타내신 말씀인 것이다.

 

예언의 신에서 확증됨

 

당신의 성육신(成肉身)을 통하여 주님께서는 새로운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의 독생자라는 칭호를 얻으셨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1:35)고 말하였다. 인간의 아들이면서도 주님께서는 새로운 의미에서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셨다. 이렇게 하여 주님께서는 나시게 되었는데 하나님의 독생자로서 인간으로 출생하심으로 인류와 연분을 맺으셨다.”(1기별, 226-227)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를 가지고 이 땅에 오신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인간을 구원하는 일에 아들이라는 칭호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시기 위해서는 아들이라는 칭호가 필요했다.

 

왜냐하면 부전자전(父傳子傳)이라는 말이 있듯이 아들은 아비의 형상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빌립이 하나님을 보여 달라고 하였을 때 다음과 같이 말씀 하셨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희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이 아버지의 품성을 나타내시기 위함임을 제자들에게 나타내신 것이다. 빌립은 외형적인 하나님을 보기를 원하였으나 예수님은 자신의 생애(품성)가 하나님의 형상(품성)임을 말씀하신 것이다. 그분은 이 사명을 수행하시기 위하여 아들이라는 칭호를 얻으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이다. 증언의 말씀을 보면 확실하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하늘에서 강림하신 것은 하나님 아버지를 나타내시기 위함이었다.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속에 있는 독생 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1:18).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11:27). 제자 중 한 사람이 아버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옵소서”(14:8)하고 요청하였을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래 너와 함께 있으되 네가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하여 아버지를 보이라 하느냐”(14:9)하셨다. ”(정로, 11)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17:5).

 

주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언약의 중보자이셨으며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1:1). 인류와 천사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이 세계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으며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1:3). 그리스도께서 만물을 창조하셨다면 만물이 있기 이전에 존재하신 것이 틀림없다. 이 문제에 관하여 하신 모든 말씀들은 너무나 결정적인 것이어서 아무도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본질적으로 또한 가장 고상한 의미에 있어서 하나님이셨다. 주님께서는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하나님께서는 만유를 주관하시며 영원토록 찬양을 받을 분이시다.가려뽑은 기별 1, 247, 248.

 

 

예수님은 아버지로부터 파생되지 않는 생명을 갖고 계심

 

예수님은 아들이라는 이름을 갖고 계셨으나 그분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이셨으며 스스로 계신 분이셨다.

예수께로부터 우리의 생명이 파생된다. 그분 안에는 빌려 오거나 다른 근원에서 가져온 생명이 아닌 본래의 생명이 있다.리뷰 앤드 헤럴드, 1914.8.6.”(적은무리, 88)

 

예수께서는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고 선언하셨다. 그리스도에게는 최초부터 있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곳에서 파생(派生)되지 않은 생명이 있다.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요일 5:12). 그리스도의 신성은 믿는 자에게 영생에 대한 보증이다. ”(소망, 530)

 

그리스도의 생명은 빌려온 것이 아니었다. 아무도 이 생명을 그분에게서 취할 수 없다. 예수님께서는 (생명)내가 스스로 버리노라”(10:18)고 말씀하셨다. 그분 안에는 독창적이고, 빌려오지 않고, 다른 데서 기원하지 않은 생명이 있었다. 인간에게는 이 생명이 본래부터 있지 않았다. 인간은 그리스도를 통하여서만 그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영문시조, 189748).”(마라나타, 301)

 

이 모든 말씀을 볼 때에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신분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것은 사실이지만 하나님아버지로부터 파생되어 존재하신 분이 아님이 확실하다.

 

 

 

연구주제 2.

 

신성의 삼위 성령하나님

 

신성의 삼위이신 성령에 대한 주제를 연구하기 전에 먼저 염두에 두어야 할 말씀이 있다. 성령의 본질은 오묘이다. 사람들은 성령을 설명할 수 없는데, 이는 주께서 인간들에게 성령의 본질을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공상적인 견해를 가지고 성경절을 모아 거기에 인간적인 해석을 가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한다면 결국은 빠져나오지 못하는 미궁에 빠질 것이다. 인간이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깊고 오묘에 관하여는 침묵이 금이다. 다수의 그리스도인들 중에는 성령의 존재(개체)는 계시지 않는다는 주장을 한다.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서 성령의 이름으로 행하여질 뿐 결코 인격적인 개체로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만약 개체를 가지고 있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존재(대상)에게 이름이 주어져 있다면 이것은 거짓의 모양이요 범신론적인 우상숭배의 사고를 낳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거짓의 모양이라도 싫어하시는 분이시기에 인격적인 개체가 없는 존재에게 존경을 표시한다면 이것은 우상숭배적인 발상이다.

 

성경에서는 성령에 대하여 바람, , , 소금, 만나, 호흡, , 기름, 손가락, , , 음성, 보증인, 비둘기, , 이슬 등 많은 모양으로 나타내셨다. 이것은 성령의 본질을 설명하신 것이 아니요 그분의 하시는 사업과 사역을 은유나 비유로 나타내신 것이다. 그분의 능력과 하시는 사업이 바람, , , 비둘기처럼 역사하심을 나타내신 것이다.

 

잘못 생각하면, 성령은 마치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요, 비인격적인 존재처럼 보인다. 그러므로 성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해 버리는 견해들이 나온다. 이같이 성령께서 하시는 사역과 능력을 상징하기 위하여 사용된 말씀을 성령의 본질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용한다면, 엉뚱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성령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그들의 주장을 말씀으로 시험해보자.

 

 

시금석-성경 말씀과 모순됨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28:19)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나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7, 8, 13)

 

성령께서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요 개체가 존재하지 않는 자에게 이름이 주어지고 인칭대명사인 그가 와서또는 그를 보내리니라는 인격적인 존칭을 사용한다면 이것은 일종의 우상숭배적인 사상과 무엇이 다른가?

성령이 단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영으로 모든 만물에게 역사하는 무 인격적이요 개체가 없는 존재요 하나님의 생각과 능력에 불과하다면 별도의 이름(성령)으로 불러져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그렇다면 천지만물 가운데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하지 않는 곳이 어디 있으며 하나님의 생각과 말씀이 역사하지 않는 곳이 어디 있는가? 이 모든 역사를 성령으로 불러야 하는가? 그래서 침례를 줄 때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과 별도로 이분들의 능력과 생각에 불과한 성령의 이름을 거명하면서 침례를 주어야 하는가? 아버지와 아들의 이름이 언급되었으면 그의 능력과 생각이 또 다시 별도의 이름으로 불리어져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이거야 말로 새로운 범신론사상인 것이다.

 

예수님의 생각과 능력은 예수님 안에 있다. 그분의 능력은 오직 말씀으로 나타나고 말씀으로 역사한다. 태초에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다. 예수님의 능력과 생각은 말씀으로 나타났지 성령이라는 이름으로 나타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예수님은 말씀이라는 칭호를 갖고 계신다. 아버지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그분의 능력과 생각은 말씀으로 나타난다. 하나님은 오직 말씀으로 모든 일을 행하신다. 그래서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우리들을 진리의 말씀으로 인도하시는 것이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16:13)

성령님이 예수님자신의 생각과 감화력라면 성령을 일컬어 또 다른 보혜사가 오시겠다고 하신 말씀은 다분히 기만적인 말씀이 된다. 왜냐하면 성령과 예수님이 동일하신분이신데 왜 다른 보혜사가 오시겠다는 존칭어를 쓰는가 말이다. 예수님 자신이 세상에 계실 때는 생각과 능력이 없으셨는가? 있었다면 이미 성령은 세상에 계셨는데 왜 내가 가면 다른 보혜사(성령)를 보내겠다고 하셨는가? 모순투성이가 된다.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성령)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16:7)

 

예수님은 육체를 가지고 세상에 오셨기에 육체적인 제한을 받으셔야 했다 그러나 성령은 육체가 아닌 신성의 본성인 무소부재(無所不在) 전지전능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오시기에 예수님 본인이 세상에 계시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고 하신 것이다. 성령은 예수님의 생각이나 능력이 아니라 또 다른 보혜사 성령이심을 알게 된다. 그러므로 성령님을 예수님의 능력이나 생각인 비인격자로 비하시키는 것은 무서운 오류임에 틀림없다. 예수님은 분명히 성령을 또 다른 한분의 인격체, 보혜사로 말씀 하셨다. 예언의 신에서도 확증하고 있다.

 

영원하신 하나님, 다시 말해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하늘의 도움으로 거룩한 품성의 참여자와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될 수 있도록 그를 하늘 천사들과 연합시켜 주기 위한 조치를 취하고 계신다.”(하늘, 148)

 

 

성령께서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갖고 계심

 

 

성경은 예수님과 마찬가지로 성령하나님에게도 여호와하나님의 칭호를 사용하고 있음을 찾을 수 있다. 다음의 말씀을 관심 있게 비교 연구해보라.

 

 

구약

신약

비고

(6:9, 10)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컨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28:25-27= “바울이 한 말로 일러 가로되 성령이 선지자 이사야로 너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것이 옳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보기는 보아도 도무지 알지 못하는도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로는 둔하게 듣고 그 눈을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아와 나의 고침을 받을까 함이라 하였으니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분은 여호와 이심 신약에서 바울은 그분을 성령으로 말씀하심.

(성령=여호와)

 

 

여호와께서 이사야 선지자에게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6:9, 10)라고 하셨다 . 그런데 사도 바울은 이사야에게 말씀하신 여호와는 곧 성령이셨다고 증거하고 있다. 이처럼 말씀을 비교하여 볼 때 성령은 여호와가 되심을 알게 된다. 더 많은 증거를 보도록 하자.

 

구약

신약

비고

(31:33-34)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34 그들이 다시는 각기 이웃과 형제를 가리켜 이르기를 너는 여호와를 알라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여호와의 말이니라

10:15-17 =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16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

17 또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내가 다시 기억지 아니하리라 하셨으니

 

바울사도는 예레미아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여호와하나님은 성령님이심을 증거함.

 

성령 = 여호와

(95:7-8) = “대저 저는 우리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백성이며 그 손의 양이라 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8 이르시기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또 광야 맛사의 날과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하게 말지어다

 

(3:7-8) =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8 노하심을 격동하여 광야에서 시험하던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사도바울은 시편기자에게 말씀하신 여호와하나님은 곧 성령님이심을 증거함.

 

성령 = 하나님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대표자이시나 인간적(육신)인 개체로 계시지 않으시며 따라서 자주(自主)하신다.”(소망, 669)

 

성령은 자주(自主), 곧 스스로 계신 분이시라고 선지자는 증거 하셨다. 이 처럼 성경과 예언의 신은 성령님을 스스로 존재하시는 여호와로 지칭하고 있다. 스스로 존재하고 계시는 성령의 존재와 개체를 부인한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다.

 

성령은 인격체이심

 

지력, 감정, 의지, 말하심, 중보, 증거, 모욕을 느낌, 속임 당함, 훼방 당함, 등은 인격자만이 소유할 수 있고 경험 할 수가 있다. 성령이 인격적인 존재가 아니요 개체가 없으시다면, 아래에 기록 된 말씀은 모두 허위가 되고 만다. 다음의 말씀들을 상고하여 보라.

 

고전 12:11 -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16:6 -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14:26 -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15:26 -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딤전 4:1 -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13:2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10:15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10:29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5:3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 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말씀하심, 나눠주심, 가르치심, 증거 하심, 성령을 속임, 이 모든 말들은 비인격자에게 해당되는 말이 될 수가 없다. 성령께서 말씀하셨다면 그분은 분명 인격자이시며, 우리를 가르치시는 분이시라면 분명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가지분이라는 증거가 된다. 우리를 감동하시고 위로하시고, 회개케 하심이 성령의 사명이라면 어찌 이분이 인격자가 아니며 개체가 없는 일종의 에너지 곧 능력이라고 치부해 버릴 것인가?

 

감화력과 능력이란 에너지라는 뜻임

 

성령께서 하나님의 능력이요 감화력이라면 현대용어로 표현한다면 성령은 하나님의 에너지라는 말이 된다. 능력(能力), 감화력(感化力)이라는 말은, () (에너지)이라는 말이다.

 

고전 2:10 -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8:26 -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15:30 -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그렇다면 에너지에 불과한 성령이 어떻게 하나님의 깊은 것을 통달하는 지능이 있는가 말이다. 에너지 자체에는 지혜와 지능이 있을 수 없다. 지혜와 지능은 하나님께만 있고 힘과 능력, 감화력은 그분의 지혜와 지능에서 나오는 일종의 에너지(power)일 뿐이다. 그러나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알 수 있는 지혜와 지능이 있음을 성경은 말하고 있지 않는가?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는 분이시다. 에너지에 불과한 성령이라면 어떻게 탄식할 수 있으며 사랑으로 우리를 권면 할 수 있겠는가? 탄식과 사랑의 행위는 지능이 없고 감화력 곧 에너지에 불과한 성령에게는 적용될 수가 없다.

 

성경에는 성령님을 인격체로 말씀하신 구절이 수도 없이 많이 발견된다. 어떻게 개체가 없고 에너지에 불과한 성령에게 그처럼 인칭 대명사를 사용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된다면 비인격자를 섬기는 우상숭배적인 사상을 갖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성경과 증언에서는 성령님을 지혜의 신으로 증거하고 있다. 지혜는 스스로 계신 여호와 하나님만이 갖고 계신 속성인 것이다. 그러므로 성령님은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의심할 여지가 없다.

 

모세가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안수하였으므로 그에게 지혜의 신이 충만하니 ”(34:9) 지혜의 신이란 성령을 일컬어 하신 말씀이다. 거룩하신 성령하나님을 뵈옵고 대화를 나누었던 이사야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6:5-7)

 

모두는 여호와(성령)의 거룩하심을 보았던 이사야 선지자처럼 엎디어 경배하고 찬송해야 할 것이다.

 

 

카톨릭 진리가 아님

 

많은 사람들은 삼위하나님의 교리는 천주교회의 교리이지 성경의 가르침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삼위하나님의 존재를 가장 명확하게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시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28:19)

 

구약성경에는 삼위에 대한 명확한 구분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다. 항상 여호와 하나님으로 모두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약에 와서 예수님이 확실하게 삼위의 존재를 밝히신 것이다. 그러나 구약에서도 삼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는 말씀들은 많이 있다.

 

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6:3)

 

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 (4:8)

 

이사야 선지자와 요한의 계시 중에 하늘천사들이 창화하면서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라고 세 번이나 창화함으로 거룩하신 세분의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그리고 창조의 역사 중에서도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1:26) ‘우리라는 표현을 세 번이나 사용하심으로 삼위의 거룩하신 존재를 암시하고 있다.

 

비록 천주교회가 삼위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친다고 하여 무조건 오류라는 주장을 해서는 안 된다.

 

 

유일하신 하나님이란 오해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6:4)

 

이 말씀을 이용하여 사단은 많은 사람들을 오류로 인도했다. 오직 아버지 하나님만이 참으로 영원하시고 스스로 계시는 분이시며 아들은 아버지와 무엇인가 다르며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의 영으로 역사하는 하나의 비존재자라는 결론을 내려 버린다. 이와 같은 결론은 당장에는 유한한 인간의 이해력을 만족시켜 주긴 하지만 사단이 던진 미혹의 화살을 맞았던 하와의 전철을 밟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는 한분의 여호와는 누구이신가? 하는 의문점을 연구해 보자. 히브리어로 하나를 표시하는 단어로 두 가지 용어가 사용된다. 에하드(ehad)와 야히드(yahid)이다.

 

에하드:

 

한 개 이상의 개체가 연합하여 하나의 단위를 나타낼 때 사용하는 단어로서 복합적인 단수를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2:24을 보면 아담과 하와는 별개의 개체이지만, “둘이 하나의 몸이 되라고 하셨을 때 사용된 하나라는 단어가 에하드이다.

 

야히드:

 

이 단어는 절대 단수 글자 그대로의 하나, 곧 유일한(only)이다.

이 단어는 하나님과 관련되어 사용된 예를 성경에서는 찾아 볼 수 없다.

 

6:4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는 하나의 단위는 절대 단수인 야히드가 아닌 에하드라는 단어를 사용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이 절대적인 한분의 개체인 의미로 생각하는 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버지, 아들, 성령 세 분은 모두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그런데 이 세 분은 하나(에하드)라고 말하고 있다. 계획과 목적과 뜻이 완전한 연합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하시며 불일치라는 것은 이 분들에게는 없기 때문에,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언의 신의 증언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아 내 말을 들을지어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견고히 서리라 그 선지자를 신뢰하라 그리하면 형통하리라 ”(대하 20:20)

 

화잇 선지자는 세 분,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 하셨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는 물 무덤으로 내려가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하나님께 충성하는 새로운 생명으로 무덤에서 일어난다. 하늘에 계신 세 분의 크신 능력자들이 보고 계신다. 그들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임석해 계신다. ”(화잇주석, 6:1-4)

 

그대들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만일 그대들이 위기에 처하여 저들의 도움을 구할 때 세 분의 능력이 그대들을 도우실 것이라는 하나의 보증이다.”(전도, 316)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보혜사는 신성의 모든 충만하심을 가진 성령이며,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한 은혜의 능력을 나타내 주시는 분이시다. 하늘에는 이와 같이 살아계신 세 분이 있는데, 위대한 능력을 가진 세 분,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산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침례를 받게 되며, 그 능력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애를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양순한 하나님의 자녀들과 협력하게 될 것이다.특별증언 B, No. 7. 62, 63 (1905)”(전도, 615)

 

우리는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세 분,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과 협력해야 하며, 이들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들로 만드실 것이다.특별증언 B, No. 7. 51 (1905)”(전도, 617)

 

침례를 받은 사람들은 타락으로부터 그들을 지켜 달라고 위대한 하늘의 세 분의 도움을 주장할 수 있으며 그들을 통해 신령한 모습을 닮아 갈 수 있도록 한 품성을 나타내 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1설교, 365)

 

우리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며, 우리가 이분들과 합력할 때, 무한하신 능력의 세 분들은 우리를 위해 연합하여 일하도록 서원 하신다.”(2설교, 167)

 

우리는 우리의 침례의 서약을 잊어 버리지 말자. 우리는 하늘의 가장 권세있는 세분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임재하심 아래? 나의 부활이요 생명이니??(11:25)라고 선언하신 분의 뜻을 행하기로 우리 자신이 맹세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부르짖는 죄인들을 용서하신다. 침례를 받을 때 용서받은 자로서 물 무덤에서 나와 그는 새로 지음을 받는다. 그리고 그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인다. 우리의 옛 죄들을 깨끗이 씻을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큰 특권임을 잊지 말자(리뷰 앤드 헤랄드, 1904526).”(높은 부르심, 157)

 

화잇 선지자는 하늘에 삼위하나님의 존재를 증거 하셨다.

 

사실상 우리들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다음과 같은 엄숙한 맹세를 하는 것이다. , 이제 이후로 우리의 생명을 삼위 하나님의 생명에 병합되게 할 것이요, 육체 가운데 사는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거룩하신 율법에 신실하게 순종하는 삶이 되게 하겠다는 맹세이다. ”(화잇주석, 26:18)

 

그리스도께서 비록 자신을 낮추사 사람이 되셨지만 여전히 그는 삼위 하나님 중의 한 분이셨다. 그가 신실하고 충성을 다하고 있는 동안에도 그의 신성은 그대로 있었다. ”(화잇주석, 1:1-3,14)

 

죄는 신성의 제 삼위의 강력한 작용을 통하여만 저항할 수 있고 이겨낼 수 있으며, 그분은 제한된 능력을 가지고 오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의 충만한 가운데 오실 것이었다. 세상의 구세주께서 이루신 일을 효력 있게 만드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은 마음을 순결하게 만드신다. ”(화잇주석, 16:8-14)

 

그분은 신성의 제 삼위되시는 성령, 곧 그분의 대리자를 보내실 작정이었다. 이 선물은 그렇게 썩 좋은 선물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분은 한 선물 속에다 모든 선물을 다 포함시킬 작정이었기 때문에 회개시키는 능력이시요, 빛을 비추어 거룩하게 하시는 능력이 되시는 하나님의 영을 그의 선물로 주셨다. ”(화잇주석, 1:8)

 

“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를 앎으로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그 일이 침례를 받음으로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하고 삼위 곧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주신 서약을 받아들인 각 사람 앞에 놓여 있다(원고 57, 1900). ”(화잇주석, 6:1-4)

 

그리스도인 생활을 시작하려고 할 때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삼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는 사람들은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 자녀가 되리라””(화잇주석, 6:1-4)

 

우리가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하나님을 섬기기로 맹세할 때에 하늘의 능력이신 삼위 하나님께서 친히 다음과 같이 맹세하신다.”(화잇주석, 6:1-4)

 

그대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사실은, 만일 그대가 삼위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할 것 같으면 모든 어려움에서 그 삼위의 능력이 그대를 도와 주실 것이라는 보증이다. 주님께서는 그리스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학교에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는 당신의 신실한 종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다.”(2보감, 396)

 

악은 세기들을 거쳐가며 축적되어 왔고, 성령, 신성의 제 삼위 되신 분의 강력한 힘에 의해서만 저지되고 물리칠 수 있었다. 그분께서는 전혀 감소되지 않은 힘으로, 곧 하나님의 능력으로 충만하신 중에 오실 것이었다.”(목사, 392)

 

영원 지존하신 삼위일체,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성령께서는 제자들을 인간을 초월한 힘으로 무장시켜 저들과 함께 사업을 이루기 위하여 전진하시며 세상 사람들로 죄를 깨닫게 하실 것이다.원고 145, 1901”(전도, 616)

 

죄의 권세를 쥐고 있는 왕자는 다만 신성의 제 삼위되시는 분, 곧 성령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의해서만 저지될 수 있다.특별증언 A. No. 10. 37 (1897”(전도, 617)

 

아들 하나님(The Son)은 신성(神聖)의 모든 충만(充滿)하심을 나타내신 분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은 그 분을 그 본체(本體)의 형상(形像)”이라고 선포(宣布)하고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의 개성(the personality of the Father)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하늘로 올라가신 후에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約束)하신 보혜사(保惠師)는 신성(神聖)의 모든 충만(充滿)하심을 가진 성령(聖靈)이며, 그리스도를 개인(個人)의 구주(救主)로 받아들이고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거룩한 은혜(恩惠)의 능력(能力)을 나타내 주시는 분이시다.

하늘에는 이와 같이 살아계신 세 분(three living persons of the heavenly trio)이 있는데, 위대한 능력(能力)을 가진 세 분(these three great powers), 곧 아버지(the Father)와 아들(the Son)과 성령(the Holy Spirit)의 이름으로, 그리스도를 산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이 침례(浸禮)를 받게 되며, 그 능력(能力)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애(生涯)를 살고자 노력하고 있는 양순(良順)한 하나님의 자녀들과 협력(協力)하게 될 것이다. 특별증언 B, No. 7. 62, 63 (1905).< Ev 614, 615 >

 

우리는 하늘의 지극히 높으신 세 분(the three highest powers), 곧 아버지(the Father)와 아들(the Son)과 성령(the Holy Spirit)과 협력(協力)해야 하며, 이들은 우리를 통해 일하시며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同役者)들로 만드실 것이다. 특별증언 B, No. 7. 51 (1905).< Ev 617 >

 

영도 개체가 있음

 

성령은 아버지와 그리스도의 영이시기에 개체를 갖고 계시지 않으며 하나님의 능력이요 감화력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영이라는 단어는 원어에는 프뉴마 (pneu'ma) 이다. 바람, 호흡, 생명, , 성령으로 번역 되었다. 그러므로 어떤 용도로 이 단어가 사용되는가에 따라 개체가 있을 수도 있고 비 인격자요 개체가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하나님께 적용될 때에는 인격적인 개체를 가지신 분으로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영이라고하고 무조건 개체가 없는 존재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4:24)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개체를 가지신 분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개체를 가지신 분으로서 자신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셨다. ”(화잇주석, 26:7-10)

 

하나님은 영이시지만 개체를 가지신 분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하나님은 개체를 가지신 분으로서, 자신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내셨다. ”(교육, 131)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대표자이시나 인간적인 개체로 계시지 않으시며 따라서 자주(自主)하신다. ”(높임, 179)

 

천사들도 하나님의 부리는 영이지만 개체를 갖고 있음을 알게 된다.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1:14)

 

 

말씀 조작설과 변경설

 

성경과 예언의 신은 모두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되었다는 것을 우리는 믿는다. 뿐만 아니라 그 기록의 보전도 사람들이 아닌 성령께서 친히 보관하시고 보존하신다는 사실이다. 만약 이 사실을 믿지 않는 다면 우리는 심각한 불신에 빠져 버릴 것이다.

 

왜냐하면 모세나 선지자들, 사도들이 직접 기록한 성경의 원본은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결국 원본은 하나도 없다는 말이다.

 

그러나 진리의 성령께서는 신실한 종들을 감동하셔서 말씀(사본)을 기록하게 하셨던 것처럼 그 보존자체도 성령의 주도하에 보전되어 전해지고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예언의 신의 말씀도 마찬가지이다. 성령께서 말씀들을 관리 보전 하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

 

보혜사는 진리의 성령이라고 불리워진다. 보혜사의 하시는 일은 진리를 밝히고 보존하는 데 있다. 그분은 먼저 진리의 성령으로 마음 가운데 거하시는바 그리하여 보혜사가 되신다.”(소망, 671)

 

이 말씀을 보면 인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완전히 보전한다는 것은 불가능함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번역이 잘못되지 않았는가?

 

성경과 예언의 신은 성령의 감동을 사람이 기록한 것이며 번역 또한 사람들이 하게 된다. 그러므로 그 과정에서 약간의 실수가 발생하는 일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용이 잘못되어 하나님의 뜻을 완전히 바꾸어 버리는 실수를 성령께서는 결코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그러므로 성경과 예언의 신의 말씀을 영감으로 받아드려야 하는 것이다.

 

경을 베끼는 자나 번역한 사람들이 어떤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들이 있지 않았을까요?”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따라서 저들은 단순하고 아름다우며 자양분과 기름끼로 가득찬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다(성경을 베끼거나 번역하는 일에 실수가 있었다 하더라도). 이런 모든 실수들이 영혼을 위태롭게 하거나 어떤 자의 발이 걸려 넘어지게 하지 않을 것이며 그런 실수들로 말미암아 가장 밝히 드러난 진리가 난해(難解)한 것이 되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1기별, 16)

 

 

유혹의 땅에서 속히 떠나라

 

하와는 에덴동산을 거닐다가 어느 사이에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 나무가 있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그는 한 음성을 듣게 되었고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3:1)라는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리고 서로 대화를 나누는 가운데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3:2-5)라는 말을 듣게 되었다.

 

그러나 그 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2:17)는 말씀과는 모순되는 말을 들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점을 발견했을 때 그는 유혹자의 음성임을 깨닫고 급히 유혹의 땅에서 떠나야 하였다. 그러나 그는 감히 유혹자와 함께 담화하였고 결과적으로 미혹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므로 유혹의 땅에서 속히 떠나라고 권고하고 싶다. 삼위 하나님의 개체와 존재를 부인하는 것은 분명 말씀과 모순되는 가르침이다. 더 이상 유혹의 장소에서 머뭇거린다면 하와와 같은 운명에 빠지고 말 것이다.

 

필경은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3:6) 계속하여 유혹자와 담화를 계속한다면 처음 들었을 때와는 달리 하나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유혹자의 말이 보암직도 하고 탐스럽게도 보이고 그래서 그 말들이 믿어지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자신만이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유혹의 열매는 자신의 남편에게도 주어먹게 한 후에야 자신이 벌거벗은 것을 깨닫게 된다. 이와 같이 성령의 인격적인 개체를 부인하고 그리스도의 신성을 격하시키는 기별에 관심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으면 자신은 물론 많은 사람을 미혹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이 사랑하는 디모데에게 권고한 말씀에 유의하자.

디모데야 네게 부탁한 것을 지키고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의 망령되고 허한 말과 변론을 피하라 이것을 좇는 사람들이 있어 믿음에서 벗어났느니라” (딤전 6:20, 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