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집안 다섯 식구의 불화와 흔들림
다섯째 천사라는 말이 이제는 그렇게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들에 의하여 다섯째 천사의 기별이 입소문으로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전히 진리를 탐구하지 아니하고 무관심한 자들에게는 울리는 꽹과리소리로 들릴는지 모른다. 이런 역사는 과거에도 그러하였으며 현재에도 그렇다. 이들은 결코 마지막 승리하는 남은 무리에는 동참하지 못할 것이다. 진리는 탐구되어야 하며 그런 자들을 성경은 “천국은 침노를 당하나니 침노하는 자는 빼앗느니라”(마 11:12)는 약속의 말씀을 듣게 된다.
예수께서는 일찍이 마지막 때를 위한 매우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아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도리어 분쟁케 하려 함이로라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 12:51-53)
마지막 선지자도 마지막 남은 무리의 여정을 계시로 보는 가운데, 진리로 인해 고민하고 기도하는 자들과 반대로 진리에 대하여 고민하지 않고 무관심한 자들에 대한 계시를 보셨다.
“나는 어떤 이들이 강한 믿음과 고민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창백했고 깊은 근심의 빛이 역력했다. 그들은 내적 고민에 시달리고 있었다.… 기도하는 자들이 계속해서 진지하게 부르짖고 있을 때 때때로 예수께로부터 한줄기의 빛이 나와 그들을 비춰 주고 그들의 마음을 격려해 주고 그들의 얼굴을 빛나게 해 주었다.
어떤 이들은 이 고민하며 부르짖는 일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으며 그들을 두르고 있는 어두움을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오히려 먹구름처럼 그들을 가두어 버렸다.”(초기, 269, 270)
첫째 천사의 기별과 흔들림
마르틴 루터의 개혁운동을 필두로 이 땅에 태어난 모든 개신교회들은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을 통하여 흔들림을 받았다. 일찍이 다니엘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예언을 성취하시기 위하여 보내신 천사들의 기별이었다.
“범죄함을 인하여 백성과 매일 드리는 제사가 그것에게 붙인 바 되었고 그것이 또 진리를 땅에 던지며 자의로 행하여 형통하였더라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그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 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바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그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단 8:12-14)
윌리암 밀러를 통하여 전해진 첫째 천사의 기별에 대하여 무관심하고 등한히 하였던 자들은 그 기별에 들어있는 하나님의 큰 섭리를 보지 못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연구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고 진리로 인해 고민하는 일에 동참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리에 관심이 없었기에 첫째 천사의 재림운동에서 다만 시기를 정하는 오류만을 발견했을 뿐이었다. 물론 재림의 시기를 정하는 일은 잘못이었다. 그러나 개신교회들이 믿고 있는 교리들 가운데는 영원지옥, 영혼불멸과 허황한 오류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렇지만, 그들은 자신들의 눈 속에 있는 들보는 보지 못하고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만 정확하게 보았던 것이다. 그 결과, 다니엘서에 나오는 수많은 예언의 성취와 마음의 순결을 위한 회개의 경험들, 곧 성령의 역사는 경험하지 못하였다.
그들은 첫째 천사의 기별에 의한 경험, 곧 구원에 이르는 첫째 조건인 마음의 순결을 얻는 일에 실패하였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얻는 첫째 조건인 진정한 회개의 경험을 하지 못함으로 순결한 마음을 얻지 못하였고, 진정한 거듭남의 경험을 할 수 없었다. 진리에 대한 무관심과 등한함의 결과는 거듭남의 체험이 없는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이 되고 말았다.
둘째 천사의 기별과 흔들림
1844년 10월 운동은 어떠하였는가?
첫째 천사의 재림운동은 실패로 끝날 것처럼 보였으나, 1844년 여름에 이르러 더 큰 재림운동의 불길로 갑자기 일어나게 되었다. 역시나 진리에 관심이 없고 등한히 한 자들은 극렬하게 재림운동을 반대하였고 불화와 분쟁은 절정에 달하였으며, 급기야 그들은 재림기별을 전하는 자들을 교회에서 출교하기에 이르렀고 신실한 자들은 교회들을 떠났다.
“교회가 재림기별을 거절하여 하나님의 권고를 거절했을 때 주께서도 그들을 버리셨다. 첫째 천사의 뒤를 이어 둘째 천사가 외쳤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계 14:8). …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기별은 1844년 여름에 선포되었고 이로 인해 약 5만명이 그들의 교회에서 나왔다.”(살아, 364)
비록 재림의 시기를 전하는 실수 가운데서도 성령의 역사는 너무나 크고 확실하게 나타났다. 그러나 진리의 기별로 인해 고민하지 아니하고 무관심하였던 자들은 큰 빛을 볼 수 없었다.
“나는 어떤 이들이 강한 믿음과 고민 가운데서 하나님께 부르짖는 것을 보았다. 그들의 용모는 창백했고 깊은 근심의 빛이 역력했다. 그들은 내적 고민에 시달리고 있었다. 확고하고 진지한 빛이 그들의 얼굴에서 반사되었고 그들의 이마에서는 굵은 땀방울이 떨어졌다.”(초기, 269)
“어떤 이들은 이 고민하며 부르짖는 일에 참여하지 않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으며 그들을 두르고 있는 어두움을 저항하지도 않았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오히려 먹구름처럼 그들을 가두어 버렸다.”(초기, 270)
오늘날 개신교회의 타락상과 진리에 대한 무지함은 바로 이런 역사에 의하여 생긴 결과이다. 진리를 위하여 고민하지 않고 무관심한 자들은 흑암에 싸이게 된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과 빛
첫째와 둘째 천사의 재림운동의 결과로 극심한 실망을 경험하여야 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지상에 임(재림)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늘 지성소로 임재하시는 예언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철저한 회개와 죄에서의 분리하도록 하시기 위해 인간의 무지를 그대로 내버려둔 것이었다. 선지자는 이 섭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셨다.
“나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기쁨으로 그들의 주님을 기다리고 있음을 보았다. … 그분은 예언적 기간을 계산하는 데 생긴 과오를 당신의 손으로 덮어 두셨다. …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낙망을 경험하도록 계획하셨다. 정해진 시간이 지나갔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쁨으로 고대하던 자들은 용기를 잃고 슬픔에 잠겼고, 예수의 오심을 사모하지는 않았으나 두려움 때문에 그 기별을 받아들였던 자들은 그가 기다리던 정한 때에 오시지 않자 모두 기뻐하였다. 그들의 증언은 사람들의 마음을 끌지 못했고 생활을 정결케 하지 못하였다. 정한 때가 지나가자 그러한 사람들은 뚜렷이 구별되어 드러났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예정하신바 이였다.”(초기, 235)
진리를 찾기 위한 고민은 계속되어야 함
실망당한 신실한 자들은 실망 중에서도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그 해답을 찾기 위하여 고민을 계속하였다. 드디어 그들은 하늘의 빛을 보게 되었고, 하늘 성소진리와 지성소의 빛을 보게 되었다. 급기야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 법궤와 그 안에 두 돌비와 유난히 빛나는 넷째 계명과 그때까지 알지 못했던 안식일이 일곱째 날(토요일)에서 첫째 날(일요일)로 변경된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유대인의 표상적인 절기에서 배운 것처럼 1844년 10월 22일부터는 실제적인 대속죄일임을 깨닫는 한 백성이 탄생된 것이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재림교회이다. 진리에 무관심했던 자들은 이 빛을 알지 못한 채 거대한 교회군락(일요일 개신교)을 형성하여 지금도 존재하고 있으나, 영적 어두움 속에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셋째 천사의 완전한 진리의 깃발을 들고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백성들이 탄생되었다. 그렇다면, 진리의 연구는 더 이상 필요 없는 것인가? 아니다 진리는 더욱 연구되어야 하였고 더 깊고 높게 그리고 넓게 이해되어야 하였다. 그러나 마지막 선지자는 재림교회도 또 다시 흔들림이 있을 것을 계시 가운데서 보셨다.
“나는 내가 본 흔들림의 의미를 물었는데 그것은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의 권면으로 인한 결과임을 보여 주었다. 이 권면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의 마음속에 작용하여 그들로 하여금 수준을 높이게 하고 진리에 매달리도록 이끌 것이다. 어떤 이들은 이 바른 증거를 저버릴 것이며 그것을 대항하여 일어나게 된다. 이로 인해 하나님의 백성들은 흔들림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초기, 270)
마지막 라오디게아교회의 흔들림의 원인은 무엇인가? 그것은 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의 권면으로 흔들림이 올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이 권면을 받아들인 자들은 표준을 높이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그 기별을 거절하고 저항하여 일어설 것이라는 말씀이다.
이 계시의 예언은 이미 1888년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성취된 사건이다. 와그너와 죤스 형제들이 제창하였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와 그리스도 우리의 의라는 기별로 성취를 보았다. 이 기별은 바로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기별이었기 때문이다.
“A.T. 죤스와 E.J. 와그너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기별은 라오디게아교회에게 보내신 하나님의 기별이다”(원고 2, 1892).
교회에서 흔들림이 일어나고 불화와 분쟁이 일어나는 원인은 기별에 대한 무관심과 등한함이 역시 그 원인이었다. 이와 같은 흔들림과 불화, 분쟁은 (1888년) 세 천사의 기별에 이어 네 번째인 것이다. 일명 넷째 천사(계시록 18장 천사)의 기별이라고 말하는 이 기별은 지극히 소중한 기별이었으나, 그 중요성에 비하여 절반도 주의를 끌지 못하였다.
“나는 참된 증인의 증거가 절반도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교회의 운명이 달려 있는 이 엄숙한 증거가 전적으로 무시당하거나 가볍게 평가되고 있다.”(초기, 270)
다섯 번째의 흔들림과 불화 분쟁
계시록 18장에는 하늘에서 내려오는 천사에 관하여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계시록 18장 천사는 한번이 아닌 두 번에 걸쳐(계 18:2, 4) 지상에 내려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에 이어 계시록 18장의 두 천사, 곧 다섯 천사의 기별이 지상에 전파되는 것을 보게 된다.
세 천사들에 이어 계시록 18장 2절에 나오는 천사의 음성, 곧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고 외치는 천사의 기별을 순서적으로 넷째 천사의 기별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어서 계시록 18장4절에는 2절(넷째 천사)과는 다른 음성(기별)을 들을 수 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 그러므로 이 기별을 다른 천사와 구별하고 순서적으로 이해하기 위하여 다섯째 천사라고 부르게 된다. 화잇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천사들이 그 힘센 천사(넷째천사)를 돕기 위하여 하늘에서 날아왔으며 나는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들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그 죄는 하늘에 사무쳤으며 하나님은 그의 불의한 일을 기억하신지라.”(초기, 277)
한 집안의 다섯 식구
이와 같이 다섯 천사의 기별에 의하여 다섯 번의 흔들림과 불화와 분쟁이 예언된 것이다.
“이후부터 한 집에 다섯 사람이 있어 분쟁하되 셋이 둘과, 둘이 셋과 하리니 아비가 아들과, 아들이 아비와, 어미가 딸과, 딸이 어미와, 시어미가 며느리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분쟁하리라 하시니라”(눅 12:52-53)
계시록 14장의 세 천사와 계시록 18장의 두 천사, 이들은 꼭 같이 하나님의 율법(안식일)을 지키며 재림을 기다리는 백성, 곧 한 집안이면서도 불화와 분쟁을 겪고 있으며 기별들을 접할 때마다 그곳에는 흔들림이 발생하고 있다.
이 불화의 원인은 무엇인가? 기별에 대한 무관심과 부주의가 그 원인이었다. 첫째에서 다섯째까지의 기별은 무엇인가? 첫째 천사에게 있었던 기별의 핵심은 다름 아닌 복음, 곧 영원한 복음이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기별이 무엇이겠는가? 복음이다. 영원한 복음, 곧 그리스도 우리의 의의 기별이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다. 이 기별 이외에 다른 기별은 없다.
다섯 천사의 경고의 기별을 요약하면, ①심판의 때, ②바벨론의 선고, ③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 ④무너지는 바벨론, ⑤내 백성아 나오라, 이 다섯 천사의 경고의 기별은 바로 복음, 영원한 복음을 잊었거나 등한히 하거나 무관심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경고의 기별이었다. 어렵고 느리게 배워서 쉽게 잊어버리는 기별이 바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이기 때문이다.
“큰 영적 진리, 곧 우리가 느리게 배우고 쉽게 잊어버리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다. … 영적 생명을 낳게 하고 우리로 의로운 행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소망, 98)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믿고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한다. 요한복음 3장 16절을 외우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없다. 이 복음은 영이요 생명이다. 그러므로 이론과 지식을 기억하고 있을지 모르나 영과 생명은 잃어버리기 일쑤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한 교리를 잊어버렸다.”(1기별, 360)
1888년, 기별자들과 기별을 거절한 이유는 자신들은 이미 그 기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이 알고 있었던 것은 이론과 지식이었을 뿐, 영과 생명이 되는 말씀의 능력은 잃어버리고 있었다. 그 결과, 넷째 천사는 지금까지 그 중요성에 비추어 볼 때, 절반도 주의를 끌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다섯째 천사의 등장
마지막 짐승의 표와 그의 우상과 접전해야 할 백성들은 복음으로 철저한 무장이 되어 있어야 할 것이며, 영생에 대한 소망은 확고하여야 할 것이며, 그러기 위해서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은 마음에 인박혀져야 하고 몸속 세포마다 하나님의 율법으로 기록되어져야 할 것이다.
지극히 소중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기별과 그리스도 우리의 의의 기별에 의하여 최소한 다섯 번은 심장의 모든 세포들이 놀라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화잇 선지자는 1888년 와그너의 기별을 듣고 다음과 같이 고백하였다.
“와그너 형제가 미네아폴리스 총회에서 이 개념들을 끌어내었을 때에 그것은 나와 내 남편 사이에 대화를 제외하고는 그 주제에 대하여 내가 들었던 어느 인간의 입술에서 나온(것 중에) 최초의 분명한 가르침이었다. … 그러나 다른 한 사람이 그것을 제시 하였을 때에 나의 심장의 모든 섬유질마다 아멘이라고 말하였다.”(원고 5, 1889).
왜 화잇 선지자는 알고 있던 진리였으나 다른 사람의 입술을 통하여 그 기별을 들었을 때, 그녀의 심장의 세포들은 아멘이라고 화답하였을까? 영과 생명이 되는 기별은 항상 새로운 것이었고, 그 기별은 바로 라오디게아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의 기별이었고, 계시록 18장 천사의 기별이요 예언된 넷째 천사의 복음이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다섯째 천사에 대한 존재를 깨닫는 영혼들에게도 심장의 세포가 아멘 하는 사건이 일어나리라고 확신한다. 다섯째 천사는 마지막으로 이 지상에 보내시는 하나님의 자비의 천사이기 때문이다. 최종적으로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선악의 대쟁투의 승리를 위하여 예비된 마지막 다섯 번째의 천사가 아닌가?
이 기별을 듣고도 무관심하고 부주의한다면 그들에게 어떤 희망이 있을까? 그러나 예언은 매우 불길하다. 다음의 말씀에 유념하기 바란다.
“이 무리의 수효는 점점 줄어들었고 어떤 이들은 흔들림을 받아 정로에서 떨어져 나갔다. 오래 참고 고민과 간구를 통해 그 고귀한 승리를 쟁취한 자들과 연합하지 아니한 부주의하고 무관심한 자들은 승리를 얻지 못하고 어두움 가운데 버려진 바 되었다.”(초기, 271)
기별과 사명
지금까지 네 번이나 천사들에 의하여 반복된 그 복음은 이제야 말로 열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이제 다섯째 천사의 기별과 사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아야 하지 않겠는가?
“세상에 비칠 마지막 자비의 빛 곧 세상에 전파되어야 할 마지막 긍휼의 기별은 하나님의 사랑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한다. 그들은 저희의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저희를 위하여 행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나타내야 한다.”(실물, 415, 416)
“그리스도께서는 무엇보다도 이 세상에서 당신의 영과 품성을 대표할 자들을 가장 크게 원하신다. 사람을 통하여 구주의 사랑이 세상에 나타나는 것보다 더 절실한 요구는 없다. 온 하늘은 사람의 마음에 즐거움과 축복이 될 거룩한 기름을 부어 줄 수 있는 통로의 역할을 할 사람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다.”(실물, 419)
호소
이 기별이 이르러 올 때 부주의하거나 무관심하지 않기를 소원하다. 불화와 분쟁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란다. 한 집안의 다섯 식구는 본래 불화하도록 계획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과 화평이 넘쳐 흘렸어야 하였다. 인종과 종파를 구별하지 않고 이 기별은 전파되어야 할 기별이다. 더 이상의 자비의 천사는 없다. 곧 주님께서는 오실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가 일할 시간은 오직 한 시간뿐인, 다섯째 천사, 다섯 번째 부르심을 받은 11시 일꾼들이 일하는 시간이 도래하였기 때문이다.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