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사는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 개혁운동의 반증

by 청지기 posted Jul 18,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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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변함없는 원칙

하나님께서 이 지구를 창조하시고 당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만드신 것은 사랑의 교제를 나눌 수 있는 더 많은 가족을 원하셨다는 기록을 보게 된다. “크도다, 그 무한하신 사랑이여! 하나님께서 그 나라를 더 넓히시려고 세상을 지으셨도다. 그분은 지적 존재자들로 된 더 많은 가족들을 원하셨다.”(원고 78, 1901). 고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창조하신 과정을 살펴보면 그분은 매우 자상하신 분이요 로맨틱하신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말씀 한 번 발하심으로 아담을 만드실 수 있었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시고 흙으로 당신의 모습으로 정성스레 빚으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는 자상함을 보게 된다.

마치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들의 입술에 입을 맞추며 그 코에 가볍게 입김을 불어넣어 잠자는 아기를 깨우는 모습을 연상하게 한다.


뿐만 아니라 창조의 과정에도 인간은 동물들과는 다르게 창조 된 것을 보게 된다. 다른 동물들은 암, 수를 동시에 창조하셨으나 사람은 그렇게 창조하지 않으셨다. 남자를 먼저 창조하시고 그를 데려다가 모든 동물의 이름을 짓도록 계획하셨다. 모든 짐승들이 암 수 쌍쌍이 몰려와 아담 앞을 지나가면서 이름을 얻는다.


아담은 그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에게 개성과 모습에 일치하는 적당한 이름들을 지어주었다. 이름을 받은 동물들은 기뻐하면서 쌍쌍이 지나간다. 모든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준 아담은 무언가 마음에 이상한 느낌을 받게 된다.

모든 동물들은 자신의 모습과 일치하는 반려자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자신에게는 자신과 닮은 반려자가 없었다.


모든 것이 완전하고 모든 것이 아름답고 부족한 것이 없었으나 아담은 무언가 채워지지 않은 그 무엇이 그의 가슴 속에 있었다. 그것이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담의 마음을 모르셨을까? 아니 그분께서 인간을 창조하심에 미처 생각하지 못하신 부분이 있었을까? 그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 2:18)고 하시면서 황급하게 여자를 만드셨을까?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다.


모든 것을 아시고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그분은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배가시키시기 위한 깜짝 이벤트가 준비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아담은 자신도 모르는 채워지지 않은 그 무엇을 생각하면서 스르르 잠을 자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하여 모든 창조물중에 가장 아름다운 걸작 품을 만드셨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을 만드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잠을 깬 아담 앞으로 이 여인을 데리고 오셨다.


아담은 형연할 수 없는 기쁨을 느낀다. 아담이 알지 못했던 그 부족이 채워지는 순간이었다.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창 2:23)

아담은 마지막으로 사랑하는 반려자의 이름을 지어주는 것으로 하루의 일과를  마치게 된다.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여자라는 호칭은 바로 아담이 태초에 자신의 반려자에게 지어준 이름이었다.  


이것은 참으로 인간의 행복과 기쁨을 배가시키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상이었고 계획이었다. 드디어 하나님께서는 두 남녀에게 다음과 같이 선언하신다.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 2:24)


태초에 하나님께서 구상하신 아담하와를 위한 혼인계획은 한편의 아름다운 드라마이다. 이처럼 결혼제도는 하나님이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준비하신 최고의 선물이요 제도이다. 그 누구도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부여하신 이 행복의 선물을 빼앗거나 막을 권리가 없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이 왔으며 죽음으로 인해 반려자를 잃어버리는 슬픔이 생겨났다. 그러나 죽음으로 반려자를 잃어버린다면 다시금 반려자를 찾아 재혼할 자유를 주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시다. 왜냐하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죄로 말미암아 죽음만이 온 것이 아니다. 인간은 죄악으로 인하여 혼인서약을 지키지 않고 반려자를 배신하는 악한 사람이 생겨났다. 특히 남자들에 의해서 였다. 인간의 악함으로 연약한 여인들은 행복을 잃어버렸고 평생을 슬픔과 고통 중에 살아가야 하였다.

그러므로 죽음과 마찬가지로 반려자의 배신으로 홀로 되었을 때에는 재혼을 허락 하신 기록을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이 독처하는 것은 인간에게 행복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버려진 여인에게 이혼증서를 주게 하여 재혼을 허락 하셨다. “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 증서를 써서 그 손에 주고 … 그 여자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신 24:1-2)라고 하신 것이다.


일찍이 모세를 통하여 말씀하셨던 그분은 이제 육신으로 이 땅에 오셔서 공생애 최초로 혼인 예식에 참여하시고 물을 포도주로 만드시는 이적을 행사하셨다. 인간의 행복에 대하여 끊임없는 관심을 나타내 보이신 것이다. 또한 그의 생애 첫 설교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누구든지 아내를 버리거든 이혼 증서를 줄 것이라 하였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저로 간음하게 함이요”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5:31-32, 19:9)라고 하신 것이다.


곧 반려자의 배신, 음행의 연고에는 재혼을 정죄하지 않으신 것이다. 인생이 결코 홀로 살도록 계획되지 않았다는 것이며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는 홀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원칙은 태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원칙이다.


이처럼 혼인을 통하여 얻을 수 있는 인간의 행복을 빼앗거나 막을 권리를 하나님께서는 어떤 인간이나 교회에게도 주신 적이 없다. 이 권리는 하나님이 친히 인간 개개인에게 주신 권리이며 본인만이 결정할 수 있는 고유의 권한인 것이다.


개혁운동은 음행한 연고는 물론 어떠한 경우에도 재혼은 불가하며 홀로 사는 것이 거룩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가르치며 불응하면 출교조치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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