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인간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겸비는 천사들에게 놀라운 일이었다.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은 그들에게 사랑과 지혜의 비밀이었으며, 창조사업에 있었던 것보다 더욱 그들의 관심을 사로잡았다. 이런 사랑이 그들을 깜짝 놀라게 했고 황홀케 했다. 그것은 너무도 격렬하고 너무도 비길 데 없고 너무도 이타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깨달을 수 없었다. 태초에 인간을 창조하신 것과 천지를 조성하신 것과 창조주께서 모든 자연을 옷 입히신 아름다움과 영광은 하늘 우주세계의 경탄과 감탄, 경외와 사랑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그들의 사령관께서 왕권을 베들레헴의 구유로 바꾸시고 당신 자신이 조롱과 모욕을 당하시고 빈곤과 중죄인의 죽음을 당하신 그 겸비는 빛을 발하는 천군들의 최고의 찬탄과 가장 심오한 기쁨을 자아냈다. 그들의 기쁨과 찬양은 폭발하고 베들레헴의 목자들에게 선언되었다. …
인간만이, 이 큰 희생을 초래케 한 인간만이 무관심을 나타냈다. 모든 다른 피조물보다 관심을 가져야 하고 기쁨을 가져야 하고 사로잡혀야 하고 가장 심오한 감사로 충만하여야 할 인간이 냉정하고 냉담했다. 이 무관심이 오늘날 하나님께 공공연히 반역하는 자들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속에서도 명백히 드러난다. 이들은 더 큰 정죄를 받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뜻을 공공연히 반역하는 자들보다 당신의 이름을 공언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더욱 크게 치욕을 당하시고 그들은 행위로 당신을 부인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죗된 생애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공언하는 진리로 말미암아 신중하지 않고 성화되지 않은 생애를 사는 그리스도인이라 공언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신다. 62
우리에게 크고 광대하게 제시된 진리들이 더욱 성취되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이런 진리대로 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더욱 깊은 진리의 인식이 요구된다. 63
62 리뷰, 1909.7.15.
63 영문시조, 1900.5.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