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신 7:3, 4)
불신자들에게 애정을 주는 위험은 깨닫지 못한다. 젊은 마음에는 결혼이 로맨스로 옷 입혀져 있다. 그러므로 상상 속에 숨겨져 있는 이런 모습을 벗겨 버리고 결혼 서약에 따르는 무거운 책임감을 마음에 새겨 주는 일은 어렵다. 이 서약은 죽음의 손 이외는 결코 갈라놓을 수 없는 띠로써 두 사람의 운명을 묶어 놓는다. …
결혼 생활의 행복과 번영은 양편의 연합에 좌우된다. 육신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마음에 동화된 마음과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겠는가? 한 사람은 육신에 씨를 뿌리고, 마음의 충동대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성령의 씨를 뿌리고, 이기심을 억제하고 성향을 극복하며, 그가 종이 된 것으로 공언하는 그 주인에게 순종하는 생애를 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거기에는 취향과 성향과 목적에 영구적인 차이가 있다. 만일 신자가 그의 확고한 원칙의 고수를 통하여 회개하지 않은 자를 구원하지 못할 것 같으면 너무도 흔히 보는 바와 같이 그는 용기를 잃고 하늘과 연결되지 않는 가련한 동료를 위하여 그의 신앙의 원칙들을 팔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다른 민족들과 결혼하는 것을 엄격하게 금하셨다. 이 금지는 히브리인들이 우상숭배자들과 결혼하지 못하게 하고 이교도의 가족들과 관계를 맺지 못하게 하기 위해 한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당시의 이교도들은,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것을 받아들이기를 끈덕지게 거부하는 이 시대의 회개하지 않는 자들보다는 훨씬 더 유리한 상태에 있었다. 오늘날의 죄인은 당시의 이교도보다 훨씬 더 죄가 많다. 왜냐하면 복음의 빛이 그의 주변을 온통 비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양심을 범하고 고의적으로 하나님의 원수가 된다. 28
28 4증언, 507, 5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