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시간: 오후 7시 35분
제7과
환난의 때(1)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613-622; 부조와 선지자, 195-203
기억절 :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서론 : “악의 세력과의 마지막 투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할 경험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과 인내와 그들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시험하실 것이다. 사단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으며 그들의 죄는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일으켜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점들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며 그들의 생애를 회고할 때에 그들의 희망은 꺼져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들의 성실한 회개를 기억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회개한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주시도록 간청할 것이다. 기도가 즉시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하여 그들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야곱이 천사를 붙잡은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을 것이며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부조, 202)
은혜의 시기가 마치고 환난이 시작됨
1.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마쳐지면 어떤 사건들이 일어나게 될 것인가?
“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 12:1)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계 16:17)
“셋째 천사의 기별이 마쳐지면 세상의 죄인들을 위한 자비의 탄원은 더 이상 없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사업을 다 이루었다. 그들은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행 3:19)르는 ‘늦은 비’(호 6:3)를 받았으므로 그들 앞에 있는 시련의 때를 위하여 준비를 갖추었다. 천사들은 하늘에서 분주히 왕래하고 있다. 지상에서 돌아온 한 천사는 그의 일이 마쳐진 것을 보고한다. 마지막 시험이 이미 세상에 주어졌고 하나님의 계명에 충성한 것이 입증된 사람들은 모두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계 7:2)을 받았다. 그 때에 예수께서는 하늘 성소에서 당신의 중보 사업을 그치신다. 그분께서는 손을 들어 큰 음성으로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분께서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고 엄숙히 선언하시자 온 하늘의 천사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는다. 생사간에 모든 사람의 운명이 결정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 사업을 마치시고 그들의 죄를 도말하셨다. 주님의 백성의 수효는 찼다.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단 7:27)는 바야흐로 구원의 후사들에게 주어지고 예수께서는 만왕의 왕, 만주의 주로 통치하시게 된다.
주님께서 성소를 떠나실 때 이 땅의 거민들에게는 암흑이 덮인다. 이처럼 두려운 시기에 의인들은 중보자 없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야 한다. 악인들을 누르고 있던 억제는 제거되고 사단이 마침내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완전히 지배하게 된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은 끝났다. 세상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절하고, 그분의 사랑을 멸시하고 그분의 율법을 유린하였다. 악인들은 그 은혜 시대에 주어진 기회를 잃어버렸고 계속적으로 거절당한 하나님의 영은 마침내 거두어졌다. 하나님의 은혜로 보호를 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은 악한 자 마귀에게서 방어되지 못한다. 사단은 이 땅의 거민들을 최후의 큰 환난 가운데 빠뜨릴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인간의 감정의 거센 바람을 막아 주지 않으면 각종 투쟁의 요소들이 쏟아져 나올 것이다. 온 세계는 옛날 예루살렘을 휩쓸었던 것보다 더 무서운 폐허를 나타낼 것이다.”(쟁투, 613-614)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위하여 중보자로서 그의 사업을 끝내실 때에 이 환난의 때가 시작될 것이다. 그때에는 영혼 개개인의 문제가 결정될 것이며 더 이상 죄로부터 정결케 하는 속죄의 피가 없을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 앞에서 인간을 위하여 봉사하시던 중보자의 자리를 떠나실 때에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계 22:11)는 엄숙한 선고가 내려진다. 그때에 억제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은 지상에서 떠나가신다. 마치 야곱이 성난 형에 의하여 죽음의 위협을 당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들을 멸하려는 악인들로부터 위협을 당하게 될 것이다. 야곱이 에서의 손에서 구원함을 받기 위하여 밤새도록 씨름한 것처럼 의인들은 그들을 둘러싼 원수들로부터 구원함을 받기 위하여 밤낮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을 것이다.”(부조, 201)
2. 은혜의 시기가 끝나고 예수님의 중보가 끝나고 환난이 시작되면서,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어떤 처지에 놓이게 될 것인가? 땅 위에 사는 주민들은 세상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된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여전히 무엇을 행할 것인가?
“그 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마 24:40, 41)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는 사람들은 세상에 심판을 초래하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비난을 받아 왔다. 그리고 그들은 천연계의 두려운 재난과, 지상을 비극으로 충만하게 하는 인간의 투쟁과 유혈 사태의 장본인으로 간주될 것이다. 마지막 경고에 따르는 능력은 악인들을 격노케 해왔다. 그들의 분노는 기별을 받아들인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일어나고 사단은 증오와 박해의 정신을 극도로 격발시킬 것이다. …
성소에서 취소할 수 없는 결정이 선고되고 세상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된 후에도 땅 위에 사는 주민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할 것이다. 여러 가지 종교의식은 하나님의 영이 이미 떠나간 사람들에 의하여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악의 왕이 그의 무서운 계획을 성취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충동할 그 극악무도한 열성이 하나님께 대한 열성처럼 보이게 할 것이다.”(쟁투, 614-615)
야곱의 환난
3.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성별하는 사람에 대하여 어떤 법령이 내릴 것인가?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게 될 고난과 고통에 관하여 예레미야 선지자는 어떻게 예언했는가?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우리가 떨리는 소리를 들으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 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렘 30:5-7)
“마침내 넷째 계명인 안식일을 성별하는 사람에 대하여 일종의 법령이 반포될 것이다. 그들은 가장 중한 형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들이라는 선고를 받고 일정한 기간이 지난 후 그들을 사형에 처하는 자유를 사람들에게 부여할 것이다. 유럽의 로마교도들과 미국의 타락한 개신교도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 대하여 그와 유사한 행동을 취하게 될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선지자가 야곱의 환난의 때라고 묘사한 고난과 고통에 빠지게 될 것이다.”(쟁투, 615-616)
“예수님이 성소에서 그의 사업을 마치기까지 네 천사가 사방에서 바람을 붙들고 있는 것을 보았으며 그의 사업이 마치는 즉시 마지막 일곱 재앙이 내리는 것도 함께 보았다. 이 재앙들 때문에 악인들이 의로운 자들에 대하여 분노하였으며 그들은 의로운 자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이 땅에 내리고 있으므로 그들을 지상에서 없애 버린다면 재앙이 멈출 것이라고 생각했다. 드디어 성도들을 핍박하고 학살하라는 법령이 공포될 것이며 그로 인해 성도들은 밤낮으로 자신의 구원을 위하여 주님 앞에 부르짖게 될 것인데, 이것이 바로 야곱의 환난이다. 그때 모든 성도들은 심한 영적 번민으로 부르짖게 될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의 음성으로 구원함을 얻게 된다.”(초기, 36-37)
“야곱이 씨름하고 고민하던 밤에 겪은 경험은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어야 할 시련을 나타낸다.”(부조, 201)
4. 마지막 7재앙 속에서 만나게 될 “야곱의 환난”은 어떤 것인가?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같이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찜이뇨 슬프다 그날이여 비할 데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이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렘 30:6, 7)
“야곱이 심한 고통을 당한 밤, 곧 야곱이 에서의 손에서 구원을 받고자 기도로 씨름하던 그 밤(창 32:24~30 참조)은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겪을 경험을 나타내 준다. 에서에게 주기로 되어 있는 아버지의 축복을 받기 위하여 기만 수단을 썼기 때문에 야곱은 형의 무서운 협박에 놀라 목숨을 구하고자 도망하였다. 여러 해 동안의 유랑 생활을 마친 후 그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자기의 처자들과 가축들을 거느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고자 출발하였다. 국경에 이르자 그는 에서가 그에게 복수할 뜻으로 일단의 군사를 이끌고 가까이 접근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공포에 사로잡혔다. 무장도 방위력도 없는 야곱의 일행들은 바야흐로 폭력과 살육으로 속절없이 희생당할 수밖에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리하여 불안과 공포의 무거운 짐에 자책의 짐이 또한 첨가되었다. 왜냐하면 그 위기는 자기 자신의 죄 때문에 초래된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매달리는 것이었다. 그의 유일한 방어책은 기도하는 길뿐이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형에게 잘못을 갚고 또한 위협당하고 있는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하여 자기로서 해야 할 일은 하나도 남김없이 다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환난의 시기가 가까워 옴에 따라 사람들 앞에서 자신들을 올바른 위치에 놓고 편견을 제거하고 양심의 자유를 위협하는 위험에서 피하기 위하여 모든 힘을 다 기울이지 않으면 안 된다.”(쟁투, 616)
야곱의 환난(2)
5. 야곱은 씨름하면서 자신의 믿음과 인내를 어떻게 증거함으로써 천사를 이길 수 있었는가? 야곱은 누구와 겨루어 이겼는가?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무엇인가?
“야곱은 태에서 그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또 장년에 하나님과 힘을 겨루되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하나님은 벧엘에서 저를 만나셨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씀하셨나니”(호 12:3, 4)
“그 사람이 가로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음이니라”(창 32:28)
“가족들이 그[야곱]의 고통을 목격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을 그 장소에서 떠나보낸 후 야곱은 하나님께 탄원하기 위하여 홀로 남았다. 그는 자기의 죄를 자복하고 자기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한다. 동시에 그는 매우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조상들과 맺으신 언약과, 벧엘에서 이상(異像)을 보던 밤에, 또한 유랑하는 땅에서 그에게 주신 약속을 성취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한다. 그의 생애에 위기가 다가왔다. 모든 것이 위험에 처해 있다. 어둠과 외로움 속에서 그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기도를 계속하고 있다. 갑자기 어떤 손이 그의 어깨를 붙잡는다. 그는 그의 원수가 자기의 생명을 빼앗으려고 하는 줄로 생각한다. 그는 죽을 힘을 다하여 그 공격자와 씨름을 한다. 날이 샐 무렵이 되자 그 낯선 사람은 초인간적인 힘을 발휘한다. 한 번 건드리자 힘이 강한 야곱은 마치 마비된 것처럼 되어 버린다. 그리하여 그는 넘어져 버리고 속절없는 상태에서 정체불명의 그 적대자의 목을 끌어안고 울면서 애원한다. 야곱은 방금 자기가 싸운 상대가 언약의 천사임을 이제 깨닫는다. 거의 모든 기력이 빠지고 극심한 고통을 당하면서도 그는 그의 목적을 포기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의 죄 때문에 오랫동안 곤란과 자책과 고통을 참아왔다. 이제 그는 그것이 용서받았다는 확증을 얻어야 한다. 그 거룩한 방문자는 바야흐로 떠나갈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야곱은 그에게 매달려서 축복해 달라고 탄원한다. 그 천사는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고 강권한다. 그러나 그 족장은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고 외친다. 얼마나 놀라운 확신과 굳센 의지와 인내력이 여기에 묘사되어 있는가! 그것이 만일 오만하고 참람된 요구였다면 야곱은 즉시 멸망당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간구는 그가 자신의 약하고 무가치한 것을 고백하고 더욱이 언약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하는 자임을 나타내는 증거였다.
그는 ‘천사와 힘을 겨루어 이기’(호 12:4)었다. 겸비와 회개와 항복을 통하여 죄와 실수가 많은 이 사람은 하늘의 권위자로 더불어 씨름하여 이겼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을 자신의 떨리는 손으로 굳게 붙잡았다. 그러므로 무한하신 사랑의 마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는 그 죄인의 간구를 물리칠 수 없으셨다. 그의 승리의 증거로서 또한 그의 본을 따르는 사람들을 권장하려 하는 표로서 그의 이름은 그의 죄를 회상케 하는 이름에서 승리를 기념하는 것으로 바뀌어졌다.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것은 그가 사람에게도 이길 수 있다는 하나의 보증이었다. 그는 에서의 분노를 더 이상 두려움으로 맞이하지 않게 되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보호하여 주셨기 때문이었다.”(쟁투, 616-617)
6. 사단은 에서를 충동하여 야곱을 거의 절망할 지경에 떨어뜨렸으나, 야곱은 어떻게 승리할 수 있었는가?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 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하옴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냄이니이다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정녕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창 32:11, 12)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6)
“사단은 천사들 앞에서 야곱을 비난하고 그가 그 자신의 죄 때문에 멸망받음이 당연하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에서를 충동하여 야곱을 향하여 진군해 오게 하였다. 그리고 그 믿음의 족장이 기도로 밤을 새울 때 사단은 그에게 범죄한 것을 깨닫게 하여 그를 낙심케 하고 하나님을 붙든 손을 놓쳐버리게 하고자 노력하였다. 야곱은 거의 절망할 지경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그는 하늘의 도움이 없이는 멸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야곱은 진정으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자비를 받고자 탄원하였다. 그는 그의 목적을 돌이키지 않았다. 그는 천사를 굳게 붙들고 열렬하고 고민 어린 호소로 부르짖은 끝에 마침내 승리를 얻었다.”(쟁투, 618)
“사단은 하나님의 천사들 앞에서 야곱을 고소하고 그가 범죄하였으므로 그를 멸할 권리가 자기에게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에서에게 야곱을 대적하여 진군하도록 충동하였다. 야곱이 밤새도록 씨름하고 있는 동안 사단은 그로 하여금 죄책감에 억눌리게 함으로 그를 낙담시켜 하나님을 굳게 붙잡는 그의 신뢰심을 깨뜨리려 하였다. 야곱이 고통 중에서도 천사를 붙잡고 눈물을 흘리며 간청할 때 하늘의 사자도 그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하여 그의 죄를 생각나게 하고 그에게서 빠져나가려고 애를 썼다. 그러나 야곱은 외면당하지 않을 것이었다. 그는 하나님께서 자비하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분의 자비에 자기 자신을 의탁하였다. 그는 자기가 죄를 회개한 것을 지적하고 구원하여 주시기를 탄원하였다. 그는 자기의 생애를 되돌아 볼 때에 거의 절망 상태에 빠졌다. 그러나 그는 천사를 굳게 붙들고 열렬하고도 애타는 부르짖음으로 승리를 얻을 때까지 간청하였다.
악의 세력과의 마지막 투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할 경험도 이와 같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믿음과 인내와 그들을 구원하시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시험하실 것이다. 사단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희망도 없으며 그들의 죄는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다는 생각을 일으켜 그들을 공포에 질리게 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결점들을 뼈저리게 느낄 것이며 그들의 생애를 회고할 때에 그들의 희망은 꺼져갈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크신 하나님의 은혜와 자신들의 성실한 회개를 기억하고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회개한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하여 주신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어 주시도록 간청할 것이다. 기도가 즉시 응답을 받지 못한다고 하여 그들의 믿음이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야곱이 천사를 붙잡은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을 것이며 그들의 부르짖는 소리는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는 말이 될 것이다.”(부조, 201-202)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시험
7. 주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끝까지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허락하시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이 겪게 되는 영적 고민은 무엇인가?
“보라 내가 너를 연단하였으나 은처럼 하지 아니하고 너를 고난의 풀무에서 택하였노라”(사 48:10)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 13)
“하나님의 백성들이 범죄한 것에 대하여 사단이 비난함으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시험하도록 사단에게 허락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그들의 확신과 믿음과 견인불발의 정신은 격렬하게 시험을 받을 것이다. 과거를 회고할 때 그들의 희망은 사라진다. 왜냐하면 그들의 온 생애에서 선을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의 연약함과 무가치함을 완전히 깨닫는다. 사단은 그들의 상태가 절망적이며 그들의 오점은 영원히 씻어 버릴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함으로 그들을 위협하고자 노력한다. 그는 그들의 믿음을 파괴시킴으로 그들이 그의 유혹에 굴복하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을 버리게 하고자 희망한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을 죽이고자 열광하는 원수들에게 에워싸일지라도 그들이 겪는 고민은 진리를 위하여 당하는 핍박을 두려워하기 때문에 생긴 것이 아니다. 그들은 아직껏 모든 죄를 다 회개하지 못하지나 않았는가, 혹은 그들의 어떤 결점 때문에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계 3:10)라고 하신 구주의 약속을 성취시키지 못하지나 않을까 하고 두려워한다. 만일 그들이 용서를 받았다는 보증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들은 고문이나 죽음 앞에서도 위축당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무가치함이 입증되고 그들 자신의 품성의 결함 때문에 그들의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면 거룩하신 하나님의 이름이 치욕을 당하게 될 것이다.”(쟁투, 618-619)
8. 영적 야곱의 환난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어떤 탄원과 애원을 올리게 되는가?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그 사람이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야곱의 환도뼈를 치매 야곱의 환도뼈가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위골되었더라 그 사람이 가로되 날이 새려 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가로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창 32:24-26)
“그들[하나님의 백성들]은 각처에서 반역의 음모에 관한 말을 듣고 또한 적극적인 반역 활동을 목격하게 된다. 그때 그들의 마음에는 그 큰 반역을 그치게 하고 악인들의 사악한 행위를 근절시키고자 하는 열렬한 욕망, 곧 애타는 심정이 타오르게 된다. 그러나 그들은 그 반역의 활동을 저지시켜 달라고 하나님께 탄원하는 한편 그들 자신에게는 악의 큰 물결을 저항하거나 방어할 능력이 전혀 없음을 깨닫고 몹시 큰 가책을 느끼게 된다. 만일 그들이 언제나 그리스도의 사업에 그들의 능력을 남김없이 쏟아오고 계속적으로 힘 있게 전진했을 것 같으면 그 사단의 세력이 그들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느끼게 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괴롭게 한다. 그리고 그들의 많은 죄를 이미 회개한 사실을 가리키면서 ‘나의 힘을 의지하고 나와 화친하며 나로 더불어 화친할 것이니라’(사 27:5)고 하신 구주의 약속을 성취시켜달라고 애원한다. 그들은 그들의 기도가 즉시 응답받지 못할지라도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비록 극심한 불안과 공포와 고통으로 괴로움을 받을지라도 그들은 간구하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 마치 야곱이 천사를 붙잡고 놓지 아니한 것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붙잡고 놓지 않는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는 말이 그들의 심령에서 우러나온다.”(쟁투, 619-620)
하나님의 날에 대한 준비, 자복과 회개
9. 이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민과 공포로 괴로워할 동안 만일 아직 자복하지 아니한 죄가 있어서는 안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들의 죄가 심판정에서 도말되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네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네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사 43:2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 그때에는 이스라엘의 죄악을 찾을지라도 없겠고 유다의 죄를 찾을지라도 발견치 못하리니 이는 내가 나의 남긴 자를 사할 것임이니라”(렘 50:20)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행 3:19)
“만일 야곱이 속임수로 장자의 상속권을 빼앗은 죄를 사전에 회개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 주심으로 그의 생명을 자비롭게 보호해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환난의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민과 공포로 괴로워할 동안 만일 아직 자복하지 아니한 죄가 그들 앞에 나타나게 되면 그들은 압도당하고 말 것이다. 절망이 그들의 믿음의 줄을 끊어 버리고,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께 도움을 애원할 확신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고 있는 동안 그들의 잘못을 고백하지 않고 숨겨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들의 죄는 이미 심판정에서 도말되었다. 그들은 그 죄들을 다시 생각해 낼 수 없다.”(쟁투, 620)
“야곱이 속임수로 장자의 명분을 빼앗은 자기 죄를 이전에 회개하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자비스럽게 그의 생명을 보존시킬 수 없으셨을 것이다. 시련의 때에도 이와 같다. 만일 하나님의 백성들이 공포와 고민으로 고통을 당하고 있는 동안에 그들 앞에 회개하지 않은 죄가 나타날 때, 그들은 압도당할 것이며 절망으로 그들의 신앙은 끊어지고 그들은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할 수 있는 담대함을 가질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기 자신들의 무가치함을 깊이 느끼는 반면 은밀한 잘못들을 가지고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죄는 그리스도의 속죄의 보혈로 도말되었을 것이므로 그들은 그 죄악들을 기억할 수 없을 것이다.”(부조. 202)
10. 하나님의 날에 대한 준비는 언제 해야 하는가? 진정으로 뉘우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도 없이, 에서와 유다는 무엇 때문에 죄를 고백했는가?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은혜의 때에 내가 네게 응답하였고 구원의 날에 내가 너를 도왔도다 내가 장차 너를 보호하여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 그들로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케 하리라”(사 49:8)
“사단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그들의 일상생활의 사소한 일에 나타나는 불성실을 간과해 버리실 것이라고 믿게끔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에 대한 태도로써 당신은 절대로 죄악을 시인하거나 묵인하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다. 죄를 핑계하거나 숨김으로 그것을 고백하지 않고 용서받지 않은 채 하늘의 기록에 남겨둔 모든 자는 사단에게 정복당할 것이다. 그들의 신앙 고백이 크면 클수록, 그들의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하나님의 안목에는 그들의 행위가 더욱 가증하게 보이고 그들의 큰 원수의 승리는 더욱 확실해진다. 하나님의 날에 대한 준비를 게을리하는 자들은 환난의 때에나 그 이후의 어떤 기간에 그 준비를 할 수 없다. 이러한 모든 자들의 경우는 희망이 없다.
아무런 준비 없이 최후의 쟁투를 맞이하는 자칭 그리스도인들은 절망 끝에 무서운 고민의 말로 그들의 죄를 자복할 것이다. 그때에 악한 자들은 그들의 고통을 보고 기뻐 날뛸 것이다. 그런 고백들은 마치 에서와 유다의 고백과 같은 성질의 것들이다. 그런 자복을 하는 자들은 죄 자체를 뉘우치는 것이 아니고 죄의 결과 때문에 슬퍼한다. 그들은 진정으로 뉘우치고 악을 미워하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다. 그들은 형벌이 무서워서 그들의 죄를 인정한다. 그러나 옛날 바로와 같이 그들은 형벌이 제거되면 다시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로 돌아갈 것이다.”(쟁투, 620-621)
충성된 하나님의 종에 대한 상
11. 야곱의 역사는 진정한 회개로써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분께서는 결코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을 보증해 준다. 당신의 백성의 고난은 크고, 풀무의 불꽃은 바야흐로 그들을 태워 버릴 것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그들에게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말 3:2, 3)
“내가 그 삼분지 일을 불 가운데 던져 은 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할 것이라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르리니 내가 들을 것이며 나는 말하기를 이는 내 백성이라 할 것이요 그들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슥 13:9)
“야곱의 역사는 또한 속임을 당하고 시험을 받아 죄에 빠졌던 사람들이라도 진정한 회개로써 하나님께 돌아오면 그분께서는 결코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보증해 준다. 사단은 그런 부류의 사람들을 멸망시키고자 애쓰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위급한 때에 그들을 위로하고 보호하기 위하여 천사를 보내 주실 것이다. 사단의 공격은 격렬하고 단호하며 그의 속임수는 무섭다. 그러나 여호와의 눈은 당신의 백성을 주목하시며 그분의 귀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고 계신다. 그들의 고난은 크고, 풀무의 불꽃은 바야흐로 그들을 태워 버릴 것처럼 보일 것이다. 연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불로 단련한 정금같이 나오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시련의 기간에 당신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사랑은 그들이 가장 순조롭고 번영하던 때에 주신 것과 똑같이 강하고 부드럽다. 그러나 그들을 풀무불 속으로 들어가게 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완전히 반사하기 위하여서는 그들에게 있는 세속적인 것들이 불타 버려야 하기 때문이다.”(쟁투, 621)
12. 우리 앞에 있는 고난과 고통의 시기에 야곱처럼 승리하기 위해서 필요 되는 것은 무엇인가?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우리 앞에 있는 고난과 고통의 시기는 우리에게 피로와 지연(遲延)과 주림에 견딜 수 있는 믿음, 곧 격렬하게 시련을 받을지라도 쇠약해지지 아니할 믿음이 필요하다. 그때를 위하여 준비할 수 있는 은혜의 시기가 모든 사람들에게 주어져 있다. 야곱은 끈기 있고 확고하였기 때문에 승리하였다. 그의 승리는 줄기찬 기도의 능력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는 하나의 실증이다. 야곱처럼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잡고 열렬하고 꾸준하게 나아가는 모든 사람은 그가 성공한 것처럼 성공할 것이다. 자아를 기꺼이 부인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고민하며 하나님의 축복을 받고자 꾸준하고 열렬하게 기도하기를 원치 않는 자들은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과 기도로 씨름하는 것이 무엇임을 깨닫고 있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모든 힘이 다할 때까지 강렬한 열망을 가지고 온 심령을 다 기울여 하나님을 찾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절망의 물결이 간구하는 자들 위에 밀려올 때 확고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는 자들이 어찌 그리 적은가!”(쟁투, 621)
[상고할 말씀]
“오늘날 믿음을 조금밖에 활용하지 않는 자들은 사단의 기만적 권세와 양심을 억압하는 법령에 굴복될 위험이 가장 크다. 비록 그들이 그 시련을 견디어 낼지라도 그들은 환난의 때에 더욱 심한 난관과 고통 속에 빠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평소에 하나님을 신뢰하는 습관을 기르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들이 등한히 한 믿음의 교훈을 무서운 절망 가운데서 배우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우리는 오늘날 주님의 약속을 실증함으로써 하나님과 친숙해져야 한다. 천사들은 열렬하고 진실한 모든 기도를 기록한다. 우리는 하나님과 나누는 교통을 등한히 하기보다 차라리 이기적 만족을 버려야 한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극심한 빈궁과 가장 큰 극기는 그분께서 인정하지 않으시는 부귀와 명예와 안일과 우정보다 더 낫다. 우리는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세상일에 몰두 당하도록 우리의 마음을 허용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우상이 되어 있는 재산과 가옥과 비옥한 토지를 우리에게서 빼앗아 가심으로써 우리에게 기도할 시간을 주실지도 모른다.
젊은이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수 없는 어떤 길에 발을 들여놓기를 거절할 것 같으면 그들은 죄에 유혹당하지 아니할 것이다. 세상을 경고할 마지막 엄숙한 사명을 전달하는 사자들이 냉담하고 무관심하고 게으른 태도가 없이 열렬한 신앙을 가지고 하나님의 축복을 구할 것 같으면, 그들은 많은 곳에서 마치 야곱처럼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창 32:30)고 말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기었으므로 왕자라는 하늘의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쟁투, 621-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