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자유는 양심과 함께 하나님이 인간에게만 주신 선물이요 특권이다.
이 자유는 어떤 나라도 어떤 권세자도 심지어 교회도 줄 수 없으며 막아서도 안 된다.
어떤 권세자라도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주신 자유를 착취하거나 구속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용인하지 않으신다.

그렇다면 교회가 말하는 양심의 자유라는 말이 무엇인가?
교회는 무엇이 옳고 그르며 선하고 악한 것인지를 분별하여 가르쳐야 할 파숫꾼의 의무를 가지고 있다.
그런 다음 순종 불순종은 개인의 자유에 맡겨야 하며 교회에는 책임이 없다.
그리고 고의적으로 잘못을 저지르고 불순종을 고집하는 자들은
복음의 질서를 좇아 행정적인 처리를 해야하며 연약한자들에게는 믿음을 도와주어야 한다.

그러면 살인무기를 들고 살인 훈련을 받고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유를
구속하는 단체에 참여하는 일을 자유라고 선포할 수 있는 권리가 교회에게 있는지 생각해보아야 한다.

십자가의 정병들에게 살인무기를, 영혼을 구원하기위하여 생명까지도 희생하신 주님의 희생을 보면서도
살인하는 훈련과 전술을 배우며, 하나님의 율법을 무시하는 군대의 조직에 참가하는 일이
과연 옳은 일인지 분별하지 못하는 영적 안목을 가졌다면 얼마나 양심이 무디어져 있는가?

우리의 청년들이 군대가 아닌 다른 어떤 단체에 참여하여 총을 잡고 살인 훈련을 받는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야단을 치며 그것은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라고 말하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군대에서 하는 일은 죄가 안 된다는 말인가? 그럴 수는 없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언행이나 침묵이나 또는 참석을 통하여 죄를 시인해서는 안 된다.”-소망, 152.

악한 것은 모양이라도 버리라는 사도의 권면을 교회가 받아드린다면 그런 일은 있을 수 없을 것이다.
집총을 하며 살인 훈련을 받고 전쟁에 참여하는 일을 교회가 양심의 자유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군대나 전쟁 중에서의 범죄는 죄가 아니라는 말과 같은 것이다.

죄가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 이유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죄가 아닐 것이다.
다만 빛을 받지 못하였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 문제에 대하여 심판을 참작하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시대의 교회는 그 빛을 받았기 때문에 변명하지 못할 것이다.

기독교회에서도 이미 오래전부터 깨닫고 있었던 양심문제인 평화주의 원칙을
최고의 진리를 갖고있는 재림교회가 순종하지 못한 채 개인의 양심으로 미루고
전쟁에 참여하는 문제와 살인무기를 잡는 일에 묵인한다면 교회는 하나님 앞에 직무유기로 선고 받지 않겠는가?

이와 같은 교회의 직무유기로 인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이 땅에 드러내야 할 재림교회의 청년들이
전쟁에 참여하는 일과 살인무기를 잡는 일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것이야 말로 얼마나 슬픈 일인가?
그렇다면 에스겔에게 주어진 경고를 교회는 면할 수 없을 것이다.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군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겔 33:7-9)

군대와 전쟁 그리고 살인무기를 잡는 일은 은혜의 왕국에서는 전혀 용납될 수 없는 법이요,
은혜의 왕국의 정신과는 맞지 않는 법이다.

“사단은 전쟁을 좋아한다. 왜냐하면 전쟁은 사람의 가장 악한 감정을 자극하며
전쟁의 희생자들을 죄악과 유혈 속으로 영원히 쓸어 넣어버리기 때문이다.
나라가 다른 나라를 대적하여 싸우도록 자극하는 것이 사단의 목적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사람들의 마음을 하나님의 날에 설 준비를 갖추는 사업에서 떠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쟁투, 589.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공사(公私)간의 범죄가 이 금령 안에 포함되어 있다.
여덟째 계명은 유괴(誘拐)와 노예 매매를 정죄하고 정복을 위한 전쟁을 금하고 있다.”-부조와 선지자, 308-309.

이런 말씀들이 우리의 양심을 울리지 못한다면 안약을사서 눈에 발라보게 하여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