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지는 시간: 오후 7시 51분
제10과
하나님의 백성의 구원(2)
[연구범위]
각 시대의 대쟁투, 645-652
기억절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7)
서론 : “우리는 이 세상에서 놀라운 속죄 문제를 깨닫기 시작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유한한 이해력으로 치욕과 영광, 생명과 죽음, 십자가에서 만난 공의와 자비를 매우 열렬하게 숙고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지라도 우리는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구속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 깊이와 높이는 다만 어렴풋하게 이해될 뿐이다. 구속의 경륜은 비록 구속받은 자들이 주께서 그들을 보시는 대로 보고, 아시는 대로 알게 될 때도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새로운 진리가 경이와 희열에 넘치는 마음속에 전개될 것이다. 비록 땅 위의 슬픔과 고통과 시련이 그치고 그 원인이 제거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지불된 대가를 언제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쟁투, 651)
영광스러운 재회
1. 의인의 부활이 있은 후에 살아남은 의인들은 누구의 음성에 의해서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할 것인가?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기 전에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른 자들에게 무엇을 주시는가? 모두가 감격에 사로잡혀 어떤 감사의 찬미를 부르는가?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계 1:5, 6)
“살아남은 의인들은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고전 15:52)된다. 하나님의 음성으로 그들은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하였다. 그들은 이제 죽지 않을 몸으로 바뀌어져 부활한 성도들과 함께 끌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다. 천사들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마 24:31)은다. 어린아이들은 천사들에 의하여 어머니들의 팔에 안긴다. 사망으로 오랫동안 헤어졌던 친구들이 다시 만나 다시는 헤어지지 않게 되며 그들은 함께 즐거운 노래를 부르면서 하나님의 도성으로 올라간다.
구름 수레의 양쪽에는 날개가 있고, 그 아래는 산 바퀴가 있다. 수레가 위를 향하여 굴러갈 때마다 바퀴는 ‘거룩하다’고 소리를 낸다. 날개 역시 움직일 때마다 ‘거룩하다’고 부르짖는다. 수행하는 천사들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하고 부르짖는다. 그리고 수레가 점점 새 예루살렘을 향하여 올라갈 때 구원받은 사람들은 ‘할렐루야!’라고 외친다.
하나님의 도성에 들어가기 전에 구주께서는 당신을 따른 자들에게 승리의 휘장을 주시고 왕족으로서의 신분의 표를 주신다. 그 광휘 찬란한 행렬은 그들의 왕 주위에 둥그렇게 둘러선다. 주님은 모든 성도와 천사들보다 더욱 위엄이 있고 큰 모습으로 나타나고 그분의 얼굴에서 흘러나오는 빛은 온화한 사랑으로 넘친다. 구원받은 셀 수 없이 큰 무리들은 모두 주님을 주목하고 일찍이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사 52:14)던 주님의 영광을 쳐다본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오른손으로 승리자들의 머리에 영광의 관을 씌워주신다. 각 사람에게 관이 주어지는데, 거기는 ‘새 이름’(계 2:17)이 새겨져 있고,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모든 사람의 손에는 승리의 종려가지와 빛나는 거문고가 쥐어진다. 그리하여 지휘하는 천사가 음을 맞추자 모든 손은 훌륭하게 거문고를 켜게 되고, 아름답고 풍부한 음조가 흘러나오게 된다. 모든 사람의 마음은 말할 수 없는 감격에 사로잡혀 모두 감사의 찬미를 부른다.”(쟁투, 645-646)
2. 공중에서 주님을 영접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며칠 동안 여행하여 하늘 도성에 도착하는가? 누가 진주문 안으로 들어갈 것인가?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는 특권은 누가 누리게 되는가?
“…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만 들어가리라”(계 21:27, 킹제임스)
“그의 계명들을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그들이 생명나무에 대한 권리를 가지며 또 그 문들을 통하여 도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려 함이니라.”(계 22:14, 킹제임스)
시 118:19-20; 사 26:2
“우리는 다 같이 구름속으로 들어가서 7일 동안 유리 바다를 향하여 올라갔다. … 예수께서 당신의 힘차고 영광스러운 팔을 드시어서 진주문을 잡으시고 번쩍이는 돌쩌귀에 걸려 있는 그 문을 뒤로 밀어제치셨다. 그러고는 우리를 향하여 ‘너희들은 나의 피에 너희 두루마기를 빨았고, 나의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서 견디었으니 안으로 들어가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모두 다 안으로 행진해 들어갔으며 그때 우리는 그 도성에 들어갈 당당한 권리가 있는 것처럼 느꼈다.”(초기, 16-17)
“드디어 우리가 거룩한 성전에 들어가려고 할 때에 예수께서는 부드러운 음성으로 ‘십사만 사천 명만이 이곳으로 들어간다’라고 말씀하셨고 우리는 모두 ‘할렐루야’라고 함성을 올렸다.”(초기, 19)
두 아담의 재회
3.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으로 영접될 때, 가장 감격스러운 만남은 어떤 장면인가? 그 이유는 무엇인가?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자가 아니요 육 있는 자요 그 다음에 신령한 자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 15:45-47)
“구속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으로 영접될 때, 존경의 마음으로 기쁘게 외치는 소리가 공중에 충만해진다. 두 아담은 바야흐로 서로 만나려 한다. 하나님의 아들은 팔을 벌리고 서서 인류의 시조, 곧 주님께서 창조하신 자이며 창조주께 범죄하고, 그의 죄 때문에 주님의 몸에 십자가의 못자국을 남기게 한 그 시조를 안으려 하신다. 잔인한 못자국을 식별하고 아담은 주님의 품에 안기려 하지 않고 겸손하게 주님의 발아래 그 자신을 던지고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고 부르짖는다. 그러나 구주께서는 친절하게 그를 안아 일으키시고 그가 오랫동안 쫓겨나 있던 에덴의 본향을 다시 한번 보라고 명령하신다.
에덴에서 쫓겨난 후로 아담의 생애는 슬픔으로 충만했었다. 시들어가는 모든 나뭇잎, 모든 희생 제물, 아름다운 천연계에 덮이는 모든 암영, 인류의 순결에 나타나는 모든 오점 등은 자기의 죄를 생생하게 기억나게 하는 것들이었다. 그가 죄악이 충만해 가는 것을 바라볼 때 받은 가책 때문에 당한 번민은 무서운 것이었다. 그가 죄를 경고하면 그는 도리어 죄를 끌어들인 당사자라는 비난을 받았다. 거의 1천년 동안 그는 꾸준한 겸손으로 죄의 형벌을 받았다. 그는 충심으로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허락하신 구주의 공로를 의지하고,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죽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인류의 실패와 타락을 구속하셨다. 그러므로 이제 속죄의 사업을 통하여 아담은 최초의 통치권을 회복한 것이다.”(쟁투, 647-648)
4. 첫째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산 증인으로서 무엇을 확인해 줄 수 있는가? 구속받은 자들의 승리의 노래와 함께 구속의 경륜을 목격한 누가 함께 찬양의 노래를 부를 것인가?
“내가 또 보고 들으매 보좌와 생물들과 장로들을 둘러선 많은 천사의 음성이 있으니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장로들은 엎드려 경배하더라”(계 5:11-14)
“아담은 기쁨으로 모든 것을 잊어버리고 일찍이 자기의 기쁨이 되었던 여러 가지 나무들, 곧 그가 무죄하고 즐거웠던 시절에 손수 그 과실들을 딴 나무들을 주목해 본다. 그는 자기 손으로 전정한 포도나무들과 한때 사랑하여 재배하던 화초들을 본다. 아담은 그것이 분명히 옛날 것과 같은 것임을 깨닫고, 정말로 회복된 에덴임을 알게 되며, 자기가 쫓겨날 때보다 그것이 더욱 아름답게 된 것을 보게 된다. 구주께서는 그를 생명나무로 인도하여 빛나는 그 열매를 따서 아담에게 먹으라고 하신다. 그는 자기 주위를 둘러보고 하나님의 낙원에 서 있는 구속받은 그의 가족의 큰 무리를 본다. 그때 그는 그 찬란한 면류관을 벗어 예수님의 발 앞에 던지고, 그분의 가슴에 몸을 던져 구주를 포옹한다. 그는 황금 거문고를 탄다. 그러자 승리의 노래가 하늘 공간에 울려 퍼진다.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아담의 가족은 주님께 경배할 때 노래를 부르며 구주의 발 앞에 그들의 면류관을 벗어 던진다.
아담의 타락을 보고 눈물을 흘리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여 승천하실 때 기뻐하고, 예수님의 이름을 믿게 될 모든 사람들을 위하여 무덤을 열어 준 천사들은 이 재회(再會)를 목격한다. 이제 그들은 구속 사업의 성취를 보고, 소리를 합하여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쟁투, 648)
144,000인의 체험의 노래
5. 구속받은 144,000인 외에는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 체험의 노래, “새 노래”는 무엇인가?
“저희가 보좌와 네 생물과 장로들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계 14:3)
“‘짐승과 그의 우상과 그의 이름의 수를 이’긴 자들의 무리가 보좌 앞에 있는 수정같이 맑은 바다, 불이 섞인 유리 바다, 하나님의 영광으로 찬란하게 빛나는 바닷가에 모인다. 땅에서 구속받은 십사만 사천 명은 하나님의 거문고를 손에 들고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선다.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은 … 거문고 타는 자들의 그 거문고 타는’ 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그들은 보좌 앞에서 ‘새 노래’를 부른다.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명 외에는 아무도 배울 수 없는 노래이다. 그것은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 곧 구원의 노래이다. 그 노래는 십사만 사천 명 외에 아무도 부를 수 없는 노래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의 체험의 노래, 곧 다른 어떤 사람도 체험하지 못한 경험의 노래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살아 있는 자들 가운데서 땅으로부터 끌어 올림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계 15:2, 3; 14:1-5)이다. 또한 ‘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이다. 그들은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의 시기를 지내고, 야곱의 환난을 견디어 하나님의 심판과 형벌이 마지막으로 내릴 때 중보자 없이 선 자들이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으므로 구원을 얻은 자들이다. 그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자들’이다.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실 것이다. 그들은 이 세상이 기근과 질병으로 황폐해지고, 태양이 심한 열로 사람들을 태우는 광경을 목격하고, 그들 스스로도 고통과 기갈을 당하였다. 그러나 이제는 ‘저희가 다시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 아니할지니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계 14:5; 7:14-17).”(쟁투, 648-649)
6. 144,000인뿐만 아니라, 각 시대를 통하여 구주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어떤 경험에 동참했으므로, 또한 주님과 함께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기에 합당한가?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롬 8:17)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3)
“각 시대를 통하여 구주의 택하심을 받은 사람들은 시련의 학교에서 교육과 훈련을 받아 왔다. 그들은 세상에서 좁은 길을 걸어가고, 고난의 풀무에서 정결함을 받았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하여 반대와 증오와 중상을 견디었다. 그들은 괴로운 투쟁을 통하여 주님을 따르고, 극기하고, 실망의 쓴맛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 자신들의 괴로운 경험을 통하여 죄의 사악함, 그 능력, 그 해독, 그 참상을 깨닫고, 죄를 미워하게 된다. 무한한 희생으로 죄에서 치료받게 되고 그들이 겸손해진 것을 깨닫고 그들의 마음은 타락한 일이 결코 없는 다른 세계의 거민들이 맛볼 수 없는 감사와 찬양의 마음으로 충만해진다. 그들은 용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더욱 많이 사랑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였으므로 주님과 함께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기에 합당하다.”(쟁투, 649-650)
구속은 영원한 주제
7. 이제 하나님의 후사들에게 이 세상에서의 고통과 애곡의 날은 영원히 끝나고 어떤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는가?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의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리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사 62:12)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며 희락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으신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사 61:3)
“하나님의 후사들은 다락방, 오막살이, 감옥, 단두대, 산, 사막, 지하 동굴, 해저 동굴 등에서 나온 자들이다. 그들은 땅에서 ‘궁핍과 환난과 학대’ 를 받은 자들이다.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사단의 기만적 요구를 강경히 거절함으로 누명을 쓰고 무덤으로 내려갔다. 그들은 인간 법정에서 가장 극악한 죄인으로 판결을 받았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 그는 심판장’(시 50:6)이 되신다. 이제 세상의 판결이 뒤집혀진다. ‘여호와께서 …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사 25:8). … 그들은 더 이상 허약한 자, 고통받는 자, 흩어진 자, 압박받는 자들이 아니다. 이제부터 그들은 언제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땅 위에서 가장 영광스런 사람이 일찍이 입어본 어떤 의복보다도 더욱 귀한 옷을 입고 보좌 앞에 선다. 그들은 지상의 왕들이 지금껏 써 본 어떤 왕관보다 더욱 영광스런 면류관을 쓴다. 고통과 애곡의 날은 영원히 끝났다. 영광의 왕께서는 모든 사람의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모든 슬픔의 원인을 제거하셨다. 그들은 종려가지를 흔들며 명랑하고 아름답고 조화로운 찬양의 노래를 부른다. 그들은 모두 소리를 합하여 천지가 흔들릴 만큼 노래를 부른다.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 그러자 온 하늘의 거민들은 다음과 같은 찬송으로 화답한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능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계 7:10, 12).”(쟁투, 650-651)
8. 땅 위의 슬픔과 고통과 시련이 그치고 그 원인이 제거되었을지라도 구속받은 자들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무엇을 계속 연구하게 될 것인가?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엡 2:7)
“우리는 이 세상에서 놀라운 속죄 문제를 깨닫기 시작할 뿐이다. 우리는 우리의 유한한 이해력으로 치욕과 영광, 생명과 죽음, 십자가에서 만난 공의와 자비를 매우 열렬하게 숙고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의 지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할지라도 우리는 그 의미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다. 구속의 사랑의 길이와 넓이, 깊이와 높이는 다만 어렴풋하게 이해될 뿐이다. 구속의 경륜은 비록 구속받은 자들이 주께서 그들을 보시는 대로 보고, 아시는 대로 알게 될 때도 완전히 이해될 수 없다. 그러나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새로운 진리가 경이와 희열에 넘치는 마음속에 전개될 것이다. 비록 땅 위의 슬픔과 고통과 시련이 그치고 그 원인이 제거되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지불된 대가를 언제나 분명하고 확실하게 알게 될 것이다.”(쟁투, 651)
“구속은 우리들의 가장 면밀한 사색의 가치가 있는 영원한 주제이다. 따라서 구속은 가장 발랄한 상상력의 가장 깊은 생각과 범위가 미치지 못하는 인간의 이해력 밖에 있다. 과연 누가 하나님을 찾아 발견할 수 있을 것인가? … 구원의 주제는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의 마음으로 깊이 연구해야 할 것이다.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구속의 경륜 가운데 새롭고 풍부한 사실들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1기별, 403)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께 드리는 감사와 찬양
9. 무엇이 영원토록 구속받은 자들의 연구와 찬양의 대상이 될 것인가? 구원을 받은 모든 민족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보면서 무엇을 할 수밖에 없는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계 5:12)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원토록 구속받은 자들의 연구와 찬양의 대상이 될 것이다. 그들은 영광을 입으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 광대한 우주의 무수한 세계들을 창조하시고 유지하시는 그분, 그룹과 영광의 스랍들이 즐겨 경배하는 사랑받는 하나님의 아들, 하늘의 왕께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을 낮추시고 죄의 치욕과 슬픔을 지시고 아버지의 얼굴에서 숨겨진 채 마침내 잃어버린 세상의 죄 때문에 갈바리의 십자가 위에서 당신의 심장이 터지고 생명이 떠나간 사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온 우주의 창조자시며 모든 운명의 결정자께서 인류를 위한 사랑 때문에 당신의 영광을 버리시고 스스로를 낮추셨다는 것은 영원히 우주의 경이와 존경을 자아낼 것이다. 구원을 받은 모든 민족들이 그들의 구주를 쳐다보고 그분의 얼굴에서 아버지 하나님의 영원한 영광이 빛나고 있는 것을 볼 때, 또한 그들이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속하는 그분의 보좌를 보고, 그분의 나라가 끝이 없을 것을 알게 될 때 그들은 환희에 사로잡혀 노래를 부를 것이다. ‘우리를 그 귀하신 보혈로 하나님께 구속하시고자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쟁투, 651-652)
10. 모든 다른 오묘들을 설명해 주는 오묘는 무엇인가?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세우신 유일한 계획은 무엇인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을 때, 만족하신 것처럼, 구속받은 자들로 말미암아 회복되었을 때도 어떻게 만족하시는가?
“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창 1:31)
“십자가의 오묘는 모든 다른 오묘들을 설명해 준다. 우리를 두려움과 경이감으로 충만하게 해주는 하나님의 속성은 갈바리에서 흘러나오는 빛을 통하여 아름답고 매력 있게 나타난다. 성결과 공의와 권능이 자비와 온유와 부모와 같은 사랑에 혼합되어 나타난다. 우리는 높고, 또한 높이 들린 하나님의 보좌의 위엄을 볼 때, 은혜롭게 나타난 그분의 품성을 보고, ‘우리 아버지’라는 사랑스런 그 칭호의 진정한 의미를 이전 어느 때보다 새롭게 이해하게 된다.
우리는 무한히 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희생시키는 길 외에 다른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이 희생의 결과로 이 세상이 거룩하고, 행복하고, 죽지 아니할 구원받은 백성들로 채워지는 기쁨이 생겼다. 구주께서 암흑의 권세로 더불어 싸우신 결과는 구속받은 자들에게 기쁨이 되고 영원히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 영혼의 가치가 참으로 크기 때문에 아버지 하나님께서는 지불된 대가를 만족히 여기신다.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도 당신의 위대한 희생의 결과를 보시고 만족히 여기신다.”(쟁투, 652)
[상고할 말씀]
“속량 받은 무리들 앞에는 거룩한 성이 나타난다. 예수께서는 진주문을 넓게 여시고 진리를 지킨 백성들을 인도하여 들어가게 하신다. 거기서 그들은 하나님의 낙원, 곧 아담이 순결했던 시절의 본향을 본다. 그때 그들은 사람의 귀로 일찍이 들어본 어떤 음악보다 더욱 훌륭한 음성을 듣는다. ‘너희 싸움은 끝났다’ ,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
예수께서는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당신께 충성한 자들을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도록 환영하신다. 구주의 즐거움은 당신의 고통과 굴욕으로 구원한 영혼들을 영광의 나라에서 보는 것이다. 또한 구속받은 자들도 그들의 기도와 수고와 희생을 통하여 그리스도께 인도한 자들을 그 축복받은 무리 중에서 보게 될 때, 주님의 기쁨에 함께 참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그들이 크고 흰 보좌 주위에 모일 때 말할 수 없는 기쁨이 그들의 마음을 채우게 될 것이다. 또한 그들은 그 때에 그리스도를 위하여 인도한 자들을 보게 되고, 그 인도를 받은 자들이 또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고, 그 다른 사람들이 또한 다시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여 그들이 모두 안식의 하늘에 들어오게 된 것을 보게 되어, 그들은 주님의 발아래 그들의 면류관을 던지고 영원히 주님을 찬송하게 된다.”(쟁투, 646-6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