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전한 믿음에서 완전한 품성(순종)이 나온다.


어떤 날 사가랴는 가브리엘천사의 방문을 받고

네 아내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아 주리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이것은 참으로 복된 소식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젊었을 때부터 아들을 얻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많은 간구를 하나님께 올렸습니다.

드디어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높은 지위에 있는 가브리엘천사를 보내어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네게 아들을 낳아 주리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1:13)

는 기별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 앞에 큰 자가 되며 모태로부터 성령의 충만함을 입”(1:15)을 것이라는 엄청나게 기쁜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소식이야 말로 사가랴 부부가 평생 동안 드린 기도의 응답이었습니다.

조금 늦어지긴 하였지만 분명 기도의 응답으로 천사의 방문을 받았고,

또 네 아들은 위대한 선지자가 되리라는 기별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기쁘고 감사한 일이 또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사가랴는 너무나 엉뚱한 대답을 하게 됩니다.

사가랴가 천사에게 이르되 내가 이것을 어떻게 알리요(이것을 어떻게 믿으란 말입니까?)

내가 늙고 아내도 나이 많으니이다”(1:18)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잊고 있었습니다.

그는 아들을 달라는 간구의 기도는 올렸으나 정작 응답이 왔을 때는 불신을 나타내었습니다.

그의 기도는 완전한 믿음의 기도가 아니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의 믿음은 완전하지 못하고 불완전 하였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임을 잊어버렸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도 믿음이 무엇인지 배우기 전에는 사가랴와 같았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 때

하나님으로부터 네 아내 사라가 아들을 낳아 줄 것이라는 약속을 듣게 됩니다.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네 자손이 번성하리라는 약속을 들었지요.

그러나 그 약속은 10년이 지나도 성취되지 않았습니다.

드디어 아내의 여종을 취하여 아들을 낳아야겠다는 계획을 세웁니다.

왜냐하면 아내 사라는 아이를 생산하지 못하는 여인이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자신이 더 늙기 전에 아이를 낳아야 하였기 때문입니다.

만약 아브라함도 늙어 자식을 낳을 능력이 없어진다면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할 수 없어지기 때문이었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계획이 필요하였습니다.

사라와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헌신하기로 계획을 세웁니다.

사라는 사랑하는 남편을 다른 여인에게 양보하는 희생을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하여 원치 않는 일부다처의 길을 선택합니다.

두 부부는 큰 헌신과 희생을 하면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게 됩니다.

 

만약 이들이 이렇게 하지 않았다면 하나님의 체면이 어떻게 되었겠습니까?

아브라함이 너무 늙어 생산할 능력이 없어진다면 하나님의 약속은 성취할 가능성은 ?

그러므로 아브라함은 이스마엘을 애지중지 키웠습니다.

아브라함은 99세가 되었을 때 자신의 몸에서 생산의 능력이 끝났음을 알게 되었지요.

그는 역시 85세 때의 자신의 생각이 옳았다고 결론을 내립니다.

지금까지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기다려 왔다면 큰 낭패를 보았을 것이라고


바로 그때 !!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나타나셨습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17:1)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는 말씀은 분명 칭찬의 말은 아닌 것 같았습니다.

아무 말 없이 아브라함은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만을 듣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17:2)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17:4)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17:5)

내가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니 열왕이 네게로 좇아 나리라”(17:6)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17:7)

 

침묵 중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청하고 있었습니다.

이때까지 아브라함은 이런 모든 축복이 이스마엘을 통하여 성취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지요.

그런데 15-16절에 이르러서 그 약속의 축복이 하갈(이스마엘)이 아닌 사라가 낳을 아들에게 주어지는 축복임을 알게 됩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쓴 웃음을 웃게 됩니다.(하나님이 자신의 나이를 잊고 있다고 생각)

 

아브라함이 엎드리어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 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 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17:17)

 

아브라함은 마음을 굳게하여 드디어 하나님께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저는 이제 사라가 아들을 낳는 것 기대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스마엘이나 죽지 않고 잘 살도록 도와주십시오.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었습니다.

 

과거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고 신뢰하기도 하였지만 ,

자신의 능력을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아내와 자신 모두에게 가능성이 없어졌을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은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지요.

이게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의 상태였습니다.

 

사가랴의 믿음도

아브라함의 믿음도 이런 불완전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러나 본인들은 이런 상태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였습니다.

 백세가 될 때까지 아들을 낳지 못하였던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었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은 믿고,

오직 말씀만을 신뢰하고,

그 말씀이 성취되기 위해서는,

오직 그 말씀만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은 완전하지 못하였습니다.

말씀도 믿었지만 자신의 행위(능력)도 의존하고 있었지요.

이것은 불완전한 믿음입니다.

이런 믿음에는 아들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다음과 같습니다.

하늘 베틀로 짠 이 두루마기에는 사람이 만든 실은 한 올도 섞이지 않았다.”(실물, 311)

 

불완전한 믿음에는

불완전한 품성이 나타납니다.

 

불완전한 믿음에는

불완전한 순종이 나나타납니다.

 

완전한 믿음에 완전한 품성,

완전한 순종이 나타납니다.

 

아브라함은 100세에 이르러 완전한 믿음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전에 아브라함의 불완전한 행동(거짓말 등)은 그의 믿음이 불완전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나중,

완전한 믿음을 배운 아브라함에게는  온전한 품성이,

독자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완전한 행위(순종)로 나타난 것입니다.

 

침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도 아들을 낳기까지 벙어리가 되는 수난을 겪으면서,

완전한 믿음을 배워야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게서 태어난 아들은 큰(위대한) 자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완전한 믿음의 아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모태에서부터 성령이 충만하였던 것입니다.

 

이 위대한 믿음의 사람들의 생애는 마지막 때를 만난 우리들을 위해서 기록된 것입니다.

주 앞에서 큰 자들이 되어야할 백성들,

주의 길(재림)을 예비해야 할 사람들(십사만사천인)이 반드시 배워야 할 믿음입니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

이론이 아니요 학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 그 자체입니다.

 

이론과 학문을 잊어지지 않으나

영이요 생명은 너무도 싶게 잊어버립니다.

말씀이 육신 되신 것처럼,

우리는 육신이 말씀이 되는 경험이 필요합니다.

 

완전한 믿음에 완전한 품성입니다.

불완전한 믿음은 불완전한 품성(순종)입니다.

 

아브라함과 마리아의 아들의 출생과 같이 사가랴에게 아들의 출생은 큰 영적 진리,

곧 우리가 느리게 배우고 쉽게 잊어버리는 진리를 가르치기 위한 것이었다.

우리 스스로는 아무런 선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없는 것도 순복하고 믿는 영혼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질 것이다. 약속의 아들을 얻은 것은 믿음을 통하여 된 것이었다. 영적 생명을 낳게 하고 우리로 의로운 행실을 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되는 것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되는 것이다.”(소망, 98)


다섯천사의 기별은 잊어버리기 쉬운 진리(믿음으로 말미암는의)를

결코 잊어지지 않도록 반복하여 가르쳐 잊어버리지 않게 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입니다.

말씀이 육신(예수님)이 되게하셨던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계획이,

이제 마지막 구속의 열매(십사만사천인)들에게도 성취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믿음의 주인이시요

십사만사천인은 땅에서 익은 믿음의 열매들입니다.

 

  마라나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