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3마리의 큰 고기를 잡는 교회
예수님의 이적 중 베드로를 통하여 고기를 잡는 두 번의 이적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고 있다.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름을 받았으나 베드로는 여러 가지 실망스런 일들로 인하여 다시 고기 잡는 어부로 돌아가는 일이 두 번이나 있었다. 그때마다 밤을 새워 고기를 잡았으나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첫 번째의 경험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던져보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밤이 맞도록 수고하여 얻은 것이 없지만은 말씀에 의지하여 그물을 내리겠다고 대답하였다. 그는 고기가 잡힐 것이라고는 기대하지 않았지만 예수님의 말씀하셨기에 체면상 던진 것이다. 그러나 그물을 당기는 순간 어부의 직감으로 엄청난 고기가 잡혔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이제 베드로는 고기에 관심이 없어졌고,
그는 배에서 내려와 예수님의 발아래 무릎을 꿇었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눅 5:8)
베드로는 자신의 불신을 생각하고 그는 죄인임을 깨달았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만나 그의 제자가 되었을 때,
예수님은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고 하셨다.
그런데 그는 사람 낚는 어부가 고기 잡는 어부가 되려고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베드로의 불신을 꾸짖지 않으셨다.
너는 많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될 것이라는 재신임의 표시로,
두 배를 가득히 채울 수 있는 헤일 수 없는 많은 고기를 잡도록 하셨던 것이다.
두 번째 경험
세월은 흘렸다.
예수님이 죽으시기 전날 밤 세 번이나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저주하였던 베드로는
자신의 배은망덕한 행동으로 인해 예수님의 얼굴을 제대로 처다 볼 수가 없었고
더 이상 제자로서의 자격을 상실하였다고 생각하였다.
사람을 낚는 어부였던 그가 또다시 고기 잡는 어부가 되려고 하였던 베드로,
그러나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하였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가라사대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요 21:5,6)
불현듯 3년 전의 일을 회상하며 그물을 던졌다.
베테랑어부였던 그는 손끝에 감각만으로도 엄청나게 큰 고기들이 잡혔음을 느낄 수 있었다.
… !!
자신의 배은망덕함의 행동으로 할 말을 잊은 베드로에게
예수께서는 먼저 말을 걸었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요 21:15)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요 21:15)
내 어린양을 먹이라
베드로는 세 번이나 주님을 공공연하게 부인했던 것 같이
예수님은 세 번이나 동일한 질문을 하셨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버리지 않으셨다.
그는 내 양을 너에게 의탁한다고 말씀하셨다.
이 때 베드로가 잡은 고기는 큰 고기로 153마리나 되었다.
“그물을 육지에 끌어올리니 가득히 찬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 ”(요 21:11)
큰 진리를 나타내심
베드로는 사람을 낚는 어부로 부르심은 받은 대표제자이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의 두 번의 불신의 경험을 통하여,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큰 진리를 가르치고 계셨다.
독자들이여 생각해보라
어찌 베테랑 어부였던 베드로가 밤이 새도록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할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말씀을 의지하고 던졌을 때,
두 배를 가득채운 헤일 수 없는 고기를 잡은 일과,
큰 고기로 153마리의 고기를 잡은 두 번의 경험은
모두가 주님이 의도하심이었다는 것이 짐작되지 않는가?
베드로의 불신의 행위를 이용하여
주님께서는 큰 진리를 가르치고자 하셨다.
설명할 수 없는 베드로의 행동
이날의 모든 역사를 기록한 사람은 요한이었는데,
요한은 말하기를,
“예수의 행하신 일이 이 외에도 많으니 만일 낱낱이 기록된다면
이 세상이라도 이 기록된 책을 두기에 부족할 줄 아노라”(요 21:25)고 하였다.
그분이 행하신 일이 너무나 많아 모두 기록한다면 보관할 장소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날의 여러 정황을 고려해본다면,
베드로는 예수님이시라는 요한의 말을 듣고 고기에는 관심이 없어졌고,
고기도 배도 버려두고 예수께로 뛰어갔다.
그런데 한가로이 베드로가 고기를 세어보았다는 것 자체가 또 이상하지 않는가?
“… 큰 고기가 일백쉰세 마리라”(요 21:11)
153 마리의 암호를 풀어라
베드로가 한가로워 고기를 세워본 것도 아니요,
호기심으로 고기의 수효를 세워본 것이 아니었다.
요한이 베드로가 세워본 153마리의 수효를 기록에 남긴 이유가 무엇일까?
독자들이여 이것이 아무런 의미 없이 단순한 숫자를 기록하였다고 생각하는가?
예수님이 하신 일을 모두 기록한다면 보관 곳이 없을 것이라고 언급했던 요한이 …
그렇다면 153마리의 수효를 기록하게 하신 성령님의 뜻이 계시지 않겠는가?
3년 전에 헤일 수 없는 수많은 고기를 잡았던 일을 생각하면서 연구해 보자.
성경에는 숫자들이 어떤 상징적인 뜻을 지니고 있음을 알 것이다.
3, 과 7, 이라는 숫자가 의미하는 뜻을 독자들은 알 것이다.
또 성경에는 666, 이라는 의미 있는 뜻을 가진 숫자가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153이라는 숫자의 조합은 참으로 생소하고 그 진의를 파악하기란 너무도 난이하다.
그러나 그냥 지나쳐 버리기엔 요한의 마지막 말씀이 허용하지 않는다.
중요하지 않은 일은 기록하지 않았다(요 21:11)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베드로를 통한 두 번의 큰 이적에서 나타난,
헤일 수 없이 많은 고기와 ,
153이라는 큰 고기의 수효는,
어떤 큰 진리를 알려주는 암호와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암호를 걸어 보관 할 진리라면,
분명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비밀이 그 속에 들어 있을 법하지 않는가?
독자들이여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암호를 풀어보자.
153의 수효가 말하는 진리
독자들은 성소의 평면도를 본적이 있을 것이다.
성소의 평면도 그림을 참조하여보자
성막 뜰(울타리)의 길이가 100규빗,
성막 뜰 세로의 길이가 50규빗 임을 보게 된다.
150 이라는 수효가 뚜렷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3이라는 수효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성소의 구조는 뜰과 첫째 칸 성소, 둘째 칸 지성소로 구분되어 있음을 보게 된다.
하나님의 임재가 있는 곳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뜰과 성소를 거쳐 지성소에 이르게 된다.
순서적으로 뜰은 1번이요 성소는 2번이요 지성소는 3번,
곧 153은 바로 성소의 구조를 암시하며,
153이 가르치는 곳은 지성소임을 깨닫게 된다.
셋째천사는 지성소를 가르킴
독자들이여
셋째천사는 하늘성소 중 지성소를 가르키고 있음을 기억하자.
“셋째 천사의 기별은 이렇게 끝을 맺는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그는 이 말을 반복하면서 하늘 성소를 가리켰다.
이 기별을 깨닫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지성소로 향하게 되었다. ”(초기, 254)
베드로가 잡은 고기의 153마리의 수효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하늘 지성소로 향하게 하는 셋째천사의 기별을 말한다.
지성소는 하나님의 영광, 품성인 세키나가 있는 곳이요,
죄가 용납되지 않는 완전한 곳이요.
완전한 품성의 144000인들을 탄생(열매)시키는 곳이다.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받은 교회
교회의 사명은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을 받았을 기억하자.
“그리스도교회는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이 지정하신 기관이다.
교회의 사명은 복음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다.”(정로, 81)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세우신 목적이 바로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이다.
그래서 이른 비 성령을 보내주셨고,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게 하셨다. (약1800년 이상)
그 결과 헤일 수 없는 많은 고기를 잡았다.
세월은 흘러 헤일 수 없을 만큼 고기는 잡혀 두 배를 가득 채웠다.
이제 예언된 기간인 2300주야가 되었을 때,
드디어 베드로가 잡은 153의 암호가 말하는 지성소시대가 도래하였다.
성소를 정결케하는 대 속죄일인 1844년 10월22일 하늘 지성소가 열린 것이다.
이제 모든 성도들은 믿음으로 지성소에 들어가라는 음성을 듣게 된다.
이제 교회는 영혼들을 지성소에 들어가도록 인도하여야 하였다.
지성소에 들어간 영혼들은 베드로가 잡은 큰 고기(153마리)들이 되는 것이다.
재림교회의 사명은 큰 고들을 잡는 사명을 받은 교회임을 잊지 말자.
셋째천사는 인치는 천사임
셋째천사는 알곡과 가라지를 구별하여 인치는 천사임을 기억할 것이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내려온 셋째천사,
그 인을 받을 사람은 십사만사천인이라는 사실을 요한은 기록하고 있다.
요한 계시록7장에서는 그 수효를 들었고,
14장에서는 그 모습을 보았다. 고 기록하고 있다.
십사만사천인, 이들이 바로 153마리의 큰 고기들인 것이다.
재림교회는 이 큰 고기를 잡도록 하기 위하여 세워진 교회임을 명심해야 한다.
헤일 수 없는 많은 무리(고기)는 이미 두 배나 가득 찼음을 기억하자.
이제153마리의 큰 고기(144000인)들의 수효만 차면,
주님께서는 중보를 마치시고,
우리를 데리려 오시겠다고 이미 말씀 하셨건만 …
독자들이여 그리스도의 피로 구속함은 받는 자들 가운데 두무리가 있음을 …
십사만사천이들과 헤일 수 없는 많은 사람들 … (계7:4,9)
베드로의 고기잡이의 이적을 통하여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신 것이다.
베드로의 두 번의 고기잡이는 바로 이와 같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가르쳐주고 있다.
범죄로 말미암아 복음이 세상에 선포된 이래,
헤일 수 없는 수많은 무리들이 구원을 받고 잠들었다.
이제 그 영혼들의 신원이 응답되어 영원한 구원을 누려야 하지 않겠는가?
재림교회는 바로 헤일 수 없는 많은 영혼들의 신원에 귀를 기우려야 한다.
재림교회만이 이들의 신원의 시간을 단축시킬 특권을 가진 교회가 아닌가?
재림교회만이 큰 고기, 십사만사천인의 수효를 채울 수 있는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제 사람 낚는 어부의 사명을 받은 재림교회는
큰 고기를 잡는 일에 전념하라시는 예수님의 분부를 기억해야 할 것이다.
153의 큰 고기의 수효가 차면 주께서는 지체 없이 이 땅에 오실 것이다.
재림성도들이여 우리의 사명이 무엇임을 기억하자.
큰 고기를 잡는 일이다.
153의 큰 고기를 잡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의 재림은 없다.
다음과 같은 증언의 말씀이 이를 증명하고 있다.
“나는 천사들이 하늘에서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보았다. 한 천사가 잉크 통(뿔로 만든)을 가지고 지구에서 돌아와 예수님께 자기의 일이 끝났음을 보고하고 성도들의 수가 차서 인치는 사업이 마쳤음을 보고했다. 그러자 나는 십계명이 들어 있는 법궤 앞에서 봉사하시던 예수께서 향로를 내던지시는 것을 보았다. 그는 그의 손을 치켜 들고 “다 이루었다”하고 큰소리로 부르짖었다. 그리고 예수께서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고 엄숙하게 선포하실 때 모든 천사들은 그들의 면류관을 벗어던졌다. 모든 사람들의 운명이 생사 간에 결정되었다.”(초기, 279-280)
확실하지 않는가?
왜 작은 고기(헤일 수 없는 무리)들이 되려고 하는가?
셋째천사의 기별을 받은 자들은 큰 고기가 되어야 하고,
셋째천사의 기별을 받은 자들은
큰 고기를 잡는 어부가 되어야 할 사명을 부여 받았음을 기억하자.
현대진리 1권, No. 3, p. 3. -“주님께서는 나에게 귀중한 영혼들이 현대진리 곧 인치는 진리와 때에 적당한 식물의 부족으로 굶어 죽어가고 있음과 또한 신속한 사자들이 저들의 길을 달려가서 현대진리로 양떼를 먹일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나는 한 천사가 ‘빠른 사자들아 급히 가라’ ‘빠른 사자들아 급히 가라’고 말하는 것과 모든 영혼의 운명은 생사간에 각각 신속히 결정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초기문집, 118. -“나는 그 때 셋째 천사를 보았다. 나를 수행하는 천사가 말했다. ‘그의 사업과 사명은 두렵고 놀라운 것이다. 그는 곡식을 가라지에서 분리해서 인을 치고 묶어서 하늘 창고에 들이는 천사이다. 이 일에 온 마음과 주의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들에게 있을지어다 아멘”(계 22: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