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하나님의 백성들의 가장 큰 의무는 하나님의 품성을 올바르게 나타내는 일이다.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참으로 영광을 받으신다.
선지자는 다음과 같이 의미심장한 말씀을 하셨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는 것은 우리들 속에 있는 하나님의 품성을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그분을 세상에 알리는 것이다. 이런 방법으로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을 세상에 알릴 때 우리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다(원고 16, 1890).”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원한다.
많은 열성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선교를 부지런히 한다.
그러나 참된 선교의 목적은 모르고 있다.
곧 하나님의 품성을 알리는 것이 참된 전도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가 전하는 복음은 참으로 좋은 복음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기별은 너무나 기쁜 소식이다.
그런데 왜 많은 사람들은 이 복음을 믿지 않을까?
세상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품성(열매)을 본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의 열매를 보면서 하나님의 인격(품성)을 판단해 버린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잘못된 품성들이 하나님을 오해케 한다.
그러므로 영생은 좋은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별로라고 생각한다.
허기야 완전한 사람들만 복음을 전해야 한다면 ...
누가 전도를 할 것이며 전도할 사람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그런 사람은 별로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최소한 복음과 함께 우리가 신조로 삼고 있는 하나님의 율법만은 완전해야만 한다.
공의롭고 자비로운 하나님의 품성의 사본인 율법 말이다.
우리가 믿는 율법이 공의롭지 못하고 자비롭지 못하다면 되겠는가?
다행스럽게도 하나님의 율법은 너무나 자비롭고 공의롭다.
그러므로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을 왜곡시키려고 한다.
율법이 단순한 모습 그대로 나타난다면 사단은 하나님의 영광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극단적인 사람들을 일으켜 율법을 왜곡시킨다.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바리세인들이다.
태초에 인류가 범죄하기전 하나님이 친히 제정하신 안식일 제도를 생각해 보자.
인생들에게 안식과 행복을 주어야 할 안식일을 그들은 가장 괴로운 날로 만들어 버렸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품성을 왜곡시켜 버린 것이다.
인간들이 불필요하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감하므로 그런 결과를 가져왔다.
하나님의 율법은 문자 그대로 단순하게 백성들에게 전해야 한다.
설명할 필요가 없다.
다만 안식일을 다른 날과 구별하여 하나님께 경배하고 즐겁고 기쁜 날로 지키면 ....
영생의 복을 누리며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인간들이 안식일을 기쁜 날이 아니라 괴롭고 힘든 날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쓸데없는 법규와 까다로운 조항을 만들어 표준을 높이려는 의도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과 인생들 사이의 사랑은 왜곡된 율법 때문에 깨어진 것이다.
그러면 안식일 제도와 함께 태초에 제정하신 결혼 제도는 어떤가?
안식일 제도가 첫째에서 넷째계명을 대표하는 계명이라면...
결혼제도는 십계명중 다섯째부터 열째까지의 계명을 대표하는 제도이다.
남편과 아내는 한 몸인 동시에 나의 가장 가까운 이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이처럼 중요한 결혼제도를 사단은 파괴 시켜버렸다.
결혼제도의 파괴는 근본적인 이웃사랑의 원칙을 파괴 시킨 것이다.
가부장제도가 거의 사람들의 뇌리에 고정관념으로 박혀 있다.
하나님의 품성은 왜곡 되었다.
가부장제도는 남성일변도의 권리를 주장하여 남성의 외도는 거의 정죄하지 않았다.
수많은 여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며 죽어갔다.
어떤 여인들은 왜곡된 이 제도를 숙명으로 받아드리고 당연하게 생각하고 살아갔다.
한편 사단은 결혼제도를 인간의 육욕주의로 오해하도록 만들어 금욕주의자들이 마치 경건한 그리스도인으로 평가받게 한다.
그리하여 태초에 하나님께서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창 2:18)라고하신 말씀을 무시하여 버렸다.
결과적으로 고독을 견디지 못하고 사랑에 굶주리게 되어 불법적인 사랑을 추구하게 된 것이다.
위선을 가장하여 얼마나 무섭고 음탕한 일이 있었는지 역사는 증명하고 있다.
신부들과 수녀들의 수도원에서 수많은 애기들의 유골들이 발견된 역사는 인간들이 하나님이 제정하신 결혼제도를 무시하고 만든 악한 제도에 의한 결과인 것이다.
오늘날은 어떤가?
세상은 물론이요 교회들에서도 이혼과 제혼은 너무나 당연한 것으로 받아드린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마 19:6)는 말씀은 무시되고 있다.
하나님의 품성은 왜곡되었고 이웃사랑은 파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가부장제도에서 해방된 또 다른 하나의 사단의 기만이다.
남성일변도가 아닌 남녀자유와 평등을 구실로 결혼 제도를 쾌락의 수단으로 전략시키고 있다.
성경에는 오직 음행한 연고에만 이혼과 재혼이 가능하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제외하고)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9)
그러나 이 말씀은 무시되고 있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노아 때와 소돔 고모라와 같은 시대가 되고 있다.
한편 사단은 또 다른 기만을 준비해 두었다.
음행한 연고가 아닌 일반적인 이혼과 재혼이 허용되므로 세상은 부패되고 있다.
사단은 이것을 빌미로 삼아 이제는 ...
음행한 연고에도 재혼은 허용할 수 없다는 법을 만들었다.
이것을 허용한다면 이혼과 재혼을 부추기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생각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품성은 또 왜곡되었다.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을지라 아들은 아비의 죄악을 담당치 아니할 것이요”(겔 18:20)
범죄한 남편은 가정을 이루어 행복하게 사는데...
무죄한 젊은 아내는 일평생 고독과 생활고에 허덕이며 살아가야 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된다.
왜 범죄한 남편의 죄로 무죄한 아내가 일평생 고통을 받으며 살아가야 하는가?
이 얼마나 하나님의 품성을 왜곡하고 있는가?
분명한 말씀을 무시하면서까지 말이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제외하고)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마 19:9)
“ J 가 자기 아내를 버린 것이 아니다. K 가 그를 버렸고 떠났으며 다른 남자와 결혼하였다. 나는 성경 말씀 가운데서 그가 주님 안에서 재혼해서는 안 될 아무런 조건도 발견할 수 없다. 그에게는 한 여인의 애정을 받을 권리가 있다. … 나는 이 새로운 결합이 방해를 받아야 할 아무런 이유를 발견할 수 없다."(서신 50, 1895).”(2기별, 339-340)
“하나님 보시기에 남편이나 아내를 결혼 서약에서 풀려날 수 있는 입장에 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간음의 죄 뿐이다. … 나는 P자매가 아직까지는 다른 남자와 결혼할 권리가 없음을 보았다. 그러나 만일 그나 혹은 어떤 다른 여인이라도 남편이 간음죄를 진 것이 사유가 되어 법적인 이혼을 한다면 그 때에는 자기가 택한 사람과 결혼하여도 무방하다. ― Letter 4a, 1863.”(재림신도의 가정, 344)
개혁운동에서는 위의 말씀을 부인한다.
개혁운동의 잘못된 원칙과 규례는 하나님의 영광을 잘못 나타내고 있다.
“하나님을 아는 것은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지식이다. …
그리스도의 제자들의 할 일은 이 세상에 하나님의 품성을 나타내며 빛을 비추는데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증가되는 빛을 붙잡아서, 하나님을 오해하고 흑암 속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 빛을 반사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품성을 올바로 나타내야 한다(리뷰 앤드 헤랄드, 1889.3.5).”(그분을 알기 위하여, 98)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장애물(악법)은 거두어 져야한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빛을 비추는 일에 힘쓰라고 말씀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너희 빛을 비추라고 하신다. … 장애물들을 제거하라.
그리하면 주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이며, 그것이 어둠을 뚫고 들어가 어둠을 흩어 버릴 것이다. ”(실물, 420)
그러므로 말씀으로 돌아가자고 호소를 드리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