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시 119:45)
무엇이 사람의 손목에 쇠고랑을 채우는가? 그것이 율법에 대한 순종인가? 아니다. 결코 아니다. 율법을 지키는 자는 자유롭게 행보한다. 감금되어 있는 자는 범법자이다. 26
얼마 전에 우리가 뉴욕주의 오스웨고를 지나고 있을 때, 두 사람의 엄격한 경찰관이 두 사람을 한데 묶어 호송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죄수들의 손목에는 커다란 납으로 만든 차꼬가 채워져 있었다. 우리는 그들이 뉴욕주의 법을 지키고 있었다고는 결론지을 수가 없었으며 그들은 법을 범하고 있었다. 그들은 법을 범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자유롭게 행보할 수 없었다. 우리는 뉴욕주의 모든 법과 일치하여 살려고 노력하고 있었으며, 그러므로 우리는 자유롭게 행보하고 법의 속박 아래 있지 않았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생애와 또한 하나님의 법과 일치하여 산다면, 그 법은 우리를 정죄하지 않으며 우리는 법의 속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두 가지 행동 과정이 있다. 하나는 우리를 하나님께로부터 떠나도록 인도하며 우리로 그분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 이 길에는 시기, 분쟁, 살인과 모든 악한 행동이 있다. 우리가 따라야 할 다른 행동 과정이 있는데, 그것은 곧 그를 따름으로 기쁨, 평강, 조화와 사랑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사랑, 그것은 우리가 마음에 간직해야 하며,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우리 마음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우리는 어떤 것보다 이 고귀한 은혜에 더욱 결핍되어 있다. 우리가 가장 필요한 것은 예수님의 품에서 타오르는 사랑이며 이 사랑이 마음속에 있으면 그것은 저절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는 마음속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질 수 있는가? 그 사랑을 다른 사람들에게 차단하고 있는가? 사랑이 있다는 것이 증거되지 않고는 사랑이 있을 수 없다. 사랑은 말 속에서 얼굴의 바로 그 표정 속에서 자연히 드러날 것이다. 27
하나님의 계명은 속박의 멍에가 아니며 계명에 대한 순종에서 우리는 부끄러워할 일이 전혀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도록 요구된 것에 심히 제한을 받고 있다고 느껴서는 안 된다. 주께서는 우리의 선함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우리에게서 보류하지 않으신다. 우리는 주님의 법도에 대한 불순종을 부끄러워해야 한다. 28
26 영문시조, 1889.9.30.
27 리뷰, 1887.1.4.
28 영문시조, 1894.10.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