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때의 모든 만물은 인류의 이익과 즐거움을 위해 창조되었다.
오감을 통해서 인간은 그가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하여 감사하고 또 이해할 수 있었다.
죄를 짓기 전 모든 만물은 아름다웠다. 시각을 통하여 인간은 가장 놀라운 우주의 심비를 이해할 수 있었고
창조물 가운데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 있었다.
우리는 한두 가지 색상밖에 볼 수가 없어 모든 만물이 다 같은 색상이고
매우 단조로워진 우리의 생활을 감히 상상조차 할 수가 없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만약 하나님께서 자연계를 많은 색상들로 아름답게 장식하셨다면
왜 우리는 우리에게 맞는 많은 장신구들과 색상들로 아름답게 꾸며서는 안 되는가 하고 질문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창조물들의 색상은 모두 자연적인 것이다. 사람을 입히는 모든 색상들은 인공적인 것들이다.
구주께서는 자연계를 매우 아름답게 만드셨는데 그렇게 함으로 인류가 그의 즐거움을 동경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인공적이고 외적인 장식이 아닌 그분의 추종자들의 품성이
그분의 품성과 같이 꼴지워지는 것이다.
하나님의 교회로 예표 된 우리들은 아래의 말씀들을 잘 읽어보아야 할 것이다.
"성경은 의복을 검소하게 입으라고 가르친다. '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라'(딤전 2:9).
이 말씀은 옷의 과시, 찬란한 색깔, 사치스런 장식 등을 금하고 있다.
입는 사람에게 주의를 집중시키거나 칭찬을 받기 위하여 고안된 의복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말한 아담한 옷에서 제외된다."(치료, 287)
"그러나 우리의 의복은 검소하고 단순하면서도 질이 좋고, 색깔이 조화롭고, 일하기에 적합해야 한다.
의복은 과시보다는 내구성(耐久性)을 위하여 선택되어야 한다.
그것은 따뜻하게 해주고 적당하게 보호해 주는 것이어야 한다. "(치료, 288)
부모들은 한 아이에게 다른 아이들보다 더 아름다운 옷을 사주는 편견으로 다른 아이들로 하여금
그 아이에 대한 질투심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잘못을 범한다. 이것은 교만과 자만을 불러일으킨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고대에 야곱이 요셉에게 준 선물을 한 예로 볼 수가 있다.
"요셉은 노년에 얻은 아들이므로 이스라엘이 여러 아들보다 그를 깊이 사랑하여 위하여 채색옷을 지었더니"
(창 37:3)
비록 요셉이 자만심에 빠지지는 않았지만 시련이 그 뒤를 따랐다.
그의 형제들은 여전히 질투심에 불타 있었고 비통한 죄를 지음으로 그들의 일생동안 그 고통을 겪어야 하였다.
입은 사람에게 잘 어울리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 않는 그러한 색상의 옷들은 질책을 받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색상의 조화가 매우 요란스럽거나 큰 꽃무늬, 요란한 빗금 무늬등은 복음의 단순성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특히 예배하는 집에서나 우리의 진리를 소개하는 일에 있어서 옷의 색상은 검소하고 단순해야 하며
우리의 기별의 가치를 떨어뜨려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