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상한 심령을 가진 사람들만이 경건한 여인들에게 주어진 성경의 지혜로운 충고들에 대하여 감사할수 있을 것이다.
만약 이 교훈들이 지켜질 경우 기쁨과 평화가 생애 가운데 있게 될 것이고 선행이 잇따를 것이다.
행동과 품행에 관한 명백한 원칙들이 초대 그리스도교 남녀들에게 주어졌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전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던 거룩한 부녀들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함으로 자기를 단장하였나니
사라가 아브라함을 주라 칭하여 복종한 것같이 너희가 선을 행하고
아무 두려운 일에도 놀라지 아니함으로 그의 딸이 되었느니라"(벧전 3:3-6)

"우리는 하나님을 순종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세상의 관습에 맞출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을 섬길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돈을 섬길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과 정반대로 걸어가면서 마음의 평안과 하나님의 인정을 얻을 수 있는가?"(4증언, 644)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일치되고자 하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므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하나님의 자녀로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금과 진주와 값진 성장(盛裝)으로 단장하는 일에서
세상의 관습과 일치되는 데 대하여 망설이지 않는다.

이런 것들을 착용하기에는 너무도 양심적인 사람들은 마음이 좁고, 미신적이요, 심지어
광신적이라고까지 취급을 받는다. 그러나 이런 교훈들을 우리에게 주기로 한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것들은 무한한 지혜를 가진 하나님이 선포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것들을 무시하는 자들은 그들 자신의 위험과 손실을 무릅쓰고 그렇게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금지된 장신구들을 고집하는 자들을 마음속에 교만과 허영을 간직하고 있다.
그들은 주목을 끌고자 욕망한다. 그들의 의복은, 나를 쳐다보라, 나를 칭찬하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사람의 본성 속에 선천적으로 존재한 허영은 방종을 통하여 꾸준히 증대해 간다.
마음이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하고자 고정되면 사람의 쓸데없는 모든 장식은 사라진다."(4증언, 644-645)

유행과 자기 과시를 위한 옷차림은 많은 그리스도인 여인들의 기도와
성경을 연구하는 시간을 빼앗아 갔고 그들의 생각과 정성은 우상에게 바쳐진바 되었다.

"거울을 들여다 볼 때마다 유행의 경배자들은 등한히 한 영혼을 상기해야 한다.
화장하는 데 낭비한 모든 시간은 지성을 황폐해지도록 버려둔 데 대해 그들을 책망할 것이다.
그리하여 생애의 모든 목표와 목적을 향상시키고 고상하게 해 줄 개혁이 있게 될 것이다"(4증언, 643-644)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시간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고 명하신다. 기도하며 깨어있어야 할 때는 바로 지금이다.
거울을 들여다 볼때마다 그리스도인 여성들은 기록하는 천사가, 기도하며 성경을 공부해야 할 시간에
자신을 꾸미고 치장하는 일에 소비하는 모습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간과하고 지나쳐 버리는 또 다른 거울이 하나 있는데,
그 거울은 하나님의 율법의 거울이다. 이 거울은 성품의 한점의 흠이나 점까지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준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거울을 바라봄으로 아름다움을 가꾸어야 한다.

"누구든지 도를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그는 거울로 자기의 생긴 얼굴을 보는 사람과 같으니
제 자신을 보고 가서 그 모양이 어떠한 것을 곧 잊어버리거니와 자유하게 하는 온전한 율법을 들여다보고 있는 자는
듣고 잊어버리는 자가 아니요 실행하는 자니 이 사람이 그 행하는 일에 복을 받으리라"(약 1:23-25)

지상 성소에서의 물두멍은 여인들이 사용하던 거울을 가지고 만들어 졌는데 이것은 성직자들이
거룩한 곳에 들어 갈 때마다 혹시도 구주께 불명예를 끼칠지도 모를 부정과 더러움을 씻는데 사용되었다.

초대교회가 은혜가운데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남에 따라 그 아름다운 영향은 어디에나 스며들어 있었다.
암흑의 어떤 세력도 이 일을 막을 수 없었다. 박해와 결핍 그리고 순교에 이르기까지,
그 어떤 것도 복음의 사자들을 낙담시키거나 방해할 수 없었고 그들의 목적을 이루는 일을 막을 수 없었다.

초대교회의 선구자들이 세상을 떠나면서 성실하지 못한 무리가 그 자리를 채웠다. 그리하여 구주께서 과거에
인도하셨던 그 길을 잊어진바 되었고 반만 회개한 이교도들이 교회에 합류하도록 문이 열렸다.

"이교의 관습은 거의 드러나지 않게 조금씩 조금씩 그리스도교회 안으로 침투해 들어왔다.
양보와 순응주의적 정신은 교회가 이교 아래서 견뎌낸 맹렬한 박해로 말미암아 한동안 방지되었었다.
그러나 이제 박해가 그치고 그리스도교가 왕궁 안으로 들어가게 되자, 교회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들의
겸손한 단순성을 버리고 이교의 제사장이나 방백(方伯)들의 교만과 허식(虛飾)을 따르게 되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사람의 이론과 유전으로 대체시켰다."(쟁투, 49)

에베소 교회가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명목상으로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받아들인 부유한 이교도들이
교회 내에 받아들여짐에 따라 교회는 시기와 편견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부유한 사람들이 영광과 존경을 받을 때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은 경시를 받았고 심지어는 압박을 당하기도 하였다.
사도 야고보는 그 당시 교회 내에서 일어난 사건들의 상태를 이렇게 언급하셨다.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돌아보아 가로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이르되 너는 거기 섰든지 내 발등상 아래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구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유업으로 받게 아니하셨느냐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괄시하였도다 부자는 너희를 압제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
만일 너희가 외모로 사람을 취하면 죄를 짓는 것이니 율법이 너희를 범죄자로 정하리라"(약 2:2-6,9)

회개하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교회 내에 받아들임으로 교만과 과시가
초기의 단순성과 함께 뒤바뀌어져 버렸다. 금반지를 끼는 것은 세상의 부유한 사람들의 풍습이었다.
이 풍습이 교회 내에 들어오도록 허용한 것은 교회의 원칙과 제약을 버린 한 예라고 할 수 있다.